이것만은 꼭 읽어세요

한국전쟁과 호주기

깊은산속 2010. 8. 6. 11:14

 

 

이승만 초대 대통령의 영부인 프란체스카 여사의 국적은 오스트리아다.
그녀가 이승만을 처음 만난 것은 1933년 스위스 제네바에서였다.
미국에 망명 중이던 이승만은 국제연맹 회의에 참석한 각국 대표들에게
한국의 독립을 호소하기 위해 제네바에 갔었다.
오스트리아 부호의 딸인 프란체스카는 영국 유학 중
어느 책에서 우연히 한국과 관련된 내용을 읽고 한국에 관심을 가지고 있었는데,
처음 만난 이승만의 해박한 지식과 열정적인 애국의지에 반해 금새 뜨겁게 달아올랐다.

두 사람은 다음 해 미국에서 백년가약을 맺었다.
이승만이 60세, 프란체스카가 35세 때였다.
프란체스카로서도 이미 환갑에 이른 25년 연상의 동양인에게 운명을 맡기는 결단이 결코 쉽지만은 않았겠지만,
그녀의 부모를 비롯하여 친지들의 반대도 자심했음은 불문가지다.
이후 그녀는 신생 대한민국 현대사의 중심에서 대통령 이승만과 고락을 함께했다.
4․19로 하와이 망명길에 오른 남편을 1965년 먼저 보낸 뒤
1970년 귀국하여 이화장에서 살다가 1992년 눈을 감을 때까지,
프란체스카는 검소한 생활을 하며 이 나라 어느 영부인보다 더욱 한국인다운 삶을 살았다.

  -한국전쟁이 일어나자 프란체스카의 고국인 오스트리아에서 전투기를 보내 한국을 지원했다.
   그런데 우리나라 사람들이 오스트리아를 오스트레일리아로 혼동하여
   오스트리아에서 보낸 전투기를 호주기라고 불렀다.
   그래서 오스트리아 사람들은 아직도 한국에 대해 섭섭해 하고 있다.-

당초 이 이야기가 어디서 발단한 것인지는 알 길이 없다.
나 또한 어디서 이 이야기를 들었거나 읽은 적이 있어 酒席閑談으로 더러 전파하기도 했다.
그러던 중 지난 6월 우연히 「국방과 기술」이란 월간지에서
<한국전쟁과 호주공군의 참전>이라는 기획기사를 읽다가 소스라치게 놀랐다.
호주공군의 활약상과 함께 ‘호주기’가 피난민들에게 큰 위안이 되었다는 이야기가 상세하게 실려 있지 않은가.
부랴부랴 한국전쟁 참전국 관련 정보를 찾아 재확인하고는 새삼 ‘無識者憂患’을 실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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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전쟁에 군대를 파견한 나라 (참전군인 총 수 ; 194만여 명) ;

    아시아 국가      터키, 태국, 필리핀
    유럽 국가        영국, 프랑스, 그리스, 네덜란드, 벨기에, 룩셈부르크
    미주 국가        미국, 캐나다, 콜롬비아
    아프리카 국가    에티오피아, 남아프리카공화국
    대양주 국가      오스트레일리아, 뉴질랜드 (이상 16개국)                      

   의료 지원국 ; 인도, 이탈리아, 덴마크, 노르웨이, 스웨덴(이상 5개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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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는 부랴부랴 오스트리아의 역사를 찾아 읽었다.
한때 유럽대륙을 호령하던 대제국 오스트리아는
제1차 세계대전에서 연합군에 패배하면서 제국이 해체되어 소국으로 전락했다.
1938년에는 독일에 합병되어 제2차 세계대전 추축국이 되었다.
대전에서 승리한 연합국 미국․영국․프랑스․소련은 오스트리아 영토를 분할 지배하던 중,
1955년 <오스트리아국가조약>을 체결하고 오스트리아를 독립시켜 영세중립국 지위를 부여했다.
오스트리아라는 국가가 비로소 성립된 된 것이다.
따라서 한국전쟁이 일어난 1950년에는 오스트리아는 존재하지도 않았으므로
한국에 전투기를 지원했다는 설은 어불성설이었다.
뿐만 아니라 오늘에 이르기까지 오스트리아는 전투기를 보유한 적이 없다.

기록에 의하면 이승만 대통령이 애칭으로 프란체스카 여사를 ‘오스트리아 댁’이라고 불렀는데,
일부에서 오스트리아를 오스트레일리아, 즉 호주와 혼동하여 ‘호주 댁’이라고 불렀다는 것이다.
오스트리아가 지원한 전투기를 호주기로 잘못 불렀다는 설은 바로 이 언저리에서 뒤얽힌 게 아닌가 싶다.
따라서 호주기라는 명칭 발생에 관한 와전으로 섭섭해 할 나라는
오스트리아가 아니라 오히려 오스트레일리아, 즉 호주인 셈이다.

호주는 사방이 대양으로 둘러싸인 지정학적 환경에 맞춰 20세기 초부터 해군과 공군력을 집중 육성해왔다.
태평양전쟁 초기 일본 전투기가 호주 연안에 폭격을 가하자 호주는 즉각 공군력 증강에 박차를 가했다.
태평양전쟁이 끝나자 호주는 영국․인도․뉴질랜드 군과 함께 영연방점령군의 일원으로 일본에 진주했다.
전체 4만 5천여 명의 영연방군 가운데 호주군은 1만 6천 명으로 가장 많아 주둔군 사령관을 독점했다.

한국전쟁이 발발하자 일본에 주둔하고 있던 호주공군 77대대는 6월 30일 한국에 도착, 미 5공군에 편입되었다.
이후 77대대는 수송기 및 폭격기 호위, 3․8선 이북 초계, 북한 지상군 공격 등에서 혁혁한 전과를 거두었다.
한반도 전역에 ‘호주기’의 명성이 자자하게 된 것이다.
주력기인 P-51 무스탕기를 압도하는 중공군의 Mig-15기가 출현하면서 많은 조종사들이 희생되기도 했다.
Mig-15기는 최고속도, 최고도 상승시간, 방향전환 등에서 당시 세계 최고였다.
호주공군은 즉각 미제 무스탕 대신 영국제 미티어 MK-8기로 대체했지만,
미티어기의 성능 역시 Mig-15기에는 미치지 못하여 크게 패한 뒤 엄호 및 비행장 방어 임무에 주력했다.
호주공군 77대대는 참전부터 1954년 7월 휴전에 이르기까지 조종사 41명이 전사하고 ‘호주기’ 58대를 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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