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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의 양심이며 작가이자 1970년 노벨 문학상을 수상한 알렉산드르 솔제니친(Alexander Solzhenitsyn, 89)이 심장마비로 모스크바에서 3일 오후(현지시각) 세상을 떴다고 그의 아들인 스테판 솔제니친(Stepan Solzhenitsyn)의 말을 빌려 에이피(AP)통신은 전했다.
솔제니친의 생애와 문학은 옛 소련 체제의 탄압과 그에 맞서는 불굴의 저항정신으로 점철됐으며 1962년 단편 ‘이반 데니소비치의 하루’를 출간 일약 세계적인 문호로 각광을 받았다.
그는 독재자 스탈린(Josef Stalin)의 탄압과 강제노동수용소(Soviet Gulag)에서의 공포에 대해 일대기 식으로 엮은 책을 출간해 당시 탄압의 질곡 속에서 그에 대한 저항정신을 드러냄으로써 세계인들의 주목을 끌었다.
그는 소련의 강제노동수용소에서 시간을 보낸 8년 동안 불굴의 의지를 보이며 스탈린의 탄에 맞섰다. 솔제니친의 소설과 넌 픽션(non-fiction)은 수백만 명을 노예로 가둬 놓은 거대한 수용소 시스템의 비밀의 역사를 세상에 드러냈다. 그러나 소련 당국은 그를 더욱 탄압을 하고 결국 그는 추방을 당했으나 오히려 국제적으로 그에 대한 평가는 새로워졌다.
그리고 그의 외국으로의 추방은 수백만 명을 감동시키며 그의 용기와 청렴결백이 알려지고 결국에는 소련 제국주의의 전체주의적 조직을 패배시키는 역할을 하기도 했다.
1962년 문학지 '노비미르'지에 발표한 단편인 “이반 데니소비치의 하루(One Day in the Life of Ivan Denisovich)”를 시작으로 인간을 “고기 써는 기계(meat grinder)"라고 묘사함으로써 수맥만 명에 이르는 소련 시민들을 사로잡았다. 강제노동수용소에서의 실상, 즉 수감자들을 육체적 정신적으로 마치 고기를 써는 듯이 못살게 굴었으며 굶주림, 혹한의 수용소를 고발했다.
그의 1973년의 3부작 “수용소 군도(Gulag Archipelago)”는 독자들을 충격 속으로 몰아넣었다. 그는 ‘수용소 군도’에서 독재자 스탈린 아래 ‘소련의 흉포성(凶暴性)’을 폭로했기 때문이다. 이로써 좌파주의 지식인들 특히 유럽에서 그동안 소련에 대한 일말의 동정심을 지우는데 큰 도움을 줬으며, 솔제니친 자신이 고난과 불의로 정신을 피폐시키는 형벌시스템 속에서 어떻게 생존할 수 있었느냐는 것도 큰 관심거리였다.
솔제니친은 1918년 12월 11일 카프카즈의 키슬로보드스크(Kislovodsk)시(市)의 한 지식인 집안에서 유복자로 태어나 교양 있는 어머니 아래에서 유년시절을 보내며 일찍부터 문학에 눈을 떴으며, 대학 졸업 후 제2차 세계대전에 참전, 1945년 동프로이센에 근무할 당시 친구에게 스탈린을 비난하는 내용이 담긴 편지 즉 ‘어떤 존경할 가치도 없는 말(certain disrespectful remarks)’이라는 글에서 스탈린을 “턱수염이 달린 남자(the man with the mustache)"를 보낸 것이 적발돼 10년간 수용소 생활을 했다. 그런 상황이 그의 저항정신과 문학의 시발점이기도 했다.
그의 1962년 데뷔작 ‘이반 데니소비치의 하루’는 당시 노비미르의 편집장은 작가의 수감시절 시련을 바탕으로 한 이 원고의 출판 여부를 결정하지 못해 공산당 총서기였던 흐루시초프에게 보여줬는데 흐루시초프는 감동의 눈물을 흘리며 출판을 지지했다는 이야기도 전해지고 있다.
그러나 1964년 흐루시초프가 실각하고 브레즈네프가 취임한 뒤 문화 활동에 대한 이념적 규제가 더욱 강화되면서 그는 곧바로 당국의 눈 밖에 나며 반체제인사의 상징으로 자리매김이 됐다. 따라서 그의 작품은 옛 소련에서 공식적으로 출판할 수 없게 됐고, 1969년에는 급기야 옛 소련 작가 동맹에서 제명되기도 했다.
따라서 그는 1967년 작품인 '암병동(Cancer Ward)'을 비롯한 작품들을 해외에서 먼저 출간해야 했고, 국내에서는 자비 출판 형태로 암암리에 발표해야만 하는 처지에 몰렸다. '암병동'은 솔제니친 자신의 암 투병 생활을 적으며 죽음을 기다리는 옛 소련의 위기를 빗대어가며 문학적으로 승화시킨 작품이다. 이 소설은 1953년 3월부터 스탈린이 사망했던 1956년 6월까지 소련 내에서 비밀리에 숨어 다니며 당시 소련의 일부였던 우즈베키스탄 타슈켄트에서 암 치료를 했던 것을 주제로 다뤘던 소설이다.
이 작품은 소비에트 체제의 구조적인 모순과 허구성을 적나라하게 폭로한 것으로 그의 문학에서 뿐만이 아니라 동 시대 러시아 문학의 정점을 이룬 대작으로 평가를 받았다.
그는 1970년 노벨문학상을 수상하는 영예를 누렸으나 동시에 이로 인해 더 큰 탄압을 받는 계기로도 작용했다. 그는 노벨상 수상을 마치고 귀국을 허락하지 않을 것을 두려워 스톡홀름에서 열린 시상식에 참석하지 못하는 일도 발생했다.
1973년 ‘수용소 군도’ 1부가 프랑스 파리에서 출간되었으며, 이 책은 볼셰비키(Bolshevik)가 집권한 1917년부터 40여 년간 행해진 체포, 심문, 정죄, 이송, 구금 등을 일대기 형태로 묘사됐다. 옛 소련 정부는 이를 계기로 반역죄를 씌워 그를 강제 추방시켰다.
그는 조국 소련으로부터 여러 차례 버림을 받았으나 끝내 그는 조국을 버리지 않았다. 1974년 당시 서독 프랑크푸르트 공항에 조착해 “나는 언젠가 소련으로 돌아갈 것이다. 작가는 조국을 떠나서 존재할 수 없기 때문이다”라는 말을 남기며 조국에 대한 변치 않은 애정을 강조하기도 했다.
그는 1976년 미국 버몬트의 조그마한 도시인 케이븐디시(Cavendish)에서 아내와 아들과 함께 거주했으며 그 이전 스위스 등지를 돌며 “취리히에서의 레닌, 졸참나무와 송아지, 치명적인 위험, 붉은 수레바퀴(The Red Wheel)” 등을 집필했다.
또한 그는 1992년이 돼서야 그의 선언대로 조국에 돌아가게 됐다. 1992년 조국의 수도 모스크바에 열렬한 환영을 받으며 입성한 그는 이후에도 공산주의에 대한 향수, 물질주의 등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를 쉼 없이 내며 체제와 타협하지 않는 저항정신과 불굴의 양심을 끝내 잃지 않았다.
한편, 그는 지난 2005년도 러시아 국영 텔레비전과의 인터뷰에서 러시아는 보다 진보적인 사회로 가기 위해 너무 빠르게 돌진했기 때문에 옛 소련 붕괴이후 15년간은 ‘잃어버린 시간’이라고 말하면서 “우리는 보다 낫게 되기를 원하며 그래서 보다 천천히 가는 것이 필요하다”라는 말을 남기기도 했다.
알렉산드르 솔제니친은 지난 2006년에 사망한 노벨문학상 수상자 나기브 마포즈 이후 노벨 문학상 수상자로서는 가장 오래 산 인물로 기록됐으며 현재 그의 대변인 역할을 한 아내 나탈랴와 세 아들은 미국에서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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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의 양심, 알렉산드르 솔제니친 타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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