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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禪風이 가득한 참선도량 문경 대승사(大承寺)

깊은산속 2008. 11. 20. 14:52

 

     禪風이 가득한 참선도량  문경 대승사(大承寺)

 

김용사를 둘러 보고나니 마음 한 켠의 때가 사라진 듯 가볍다.

보고싶은 것을 볼 수 있었다는 만족과 충족감에서 오는 기분이다.

지금 이라도 누군가와 마주치면 그에게 무엇 인가를 해주고 싶은 심정이다.

그것이 어떤 형태이던....

미친놈 처럼 웃어주고도 싶고,꾸벅 절을 하고도 싶고, 소위 무재칠시(無財七施) 중

몇 가지라도 하고 싶을 만큼 기분이 좋다.

 

내친김에 김용사에서 멀지 않은 대승사도 찾아가기로 했다.

사실 그전 까지만해도 "대승사"는 생소한 이름이었는데,김용사를 찾아 오면서 안내

표지판에 쓰여진 것을 보고 그 존재를 알게된 사찰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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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렵한 모습의 일주문

 

대승사(大乘寺)는 경북 문경의 사불산에 있는 절로 신라 진평왕 9년(587)에 망명스님이 창건한 고찰이다.

이 산이 사불산(四佛山)이란 이름으로 불리는 것은 산마루에 사면석불상이 있기 때문인데 지금도 이 석불이 있다.

신라 진평왕 9년에 이 불상이 비단보자기에 쌓여 하늘에서 떨어지니 왕이 직접 찾아와 예배를 드리고 망명스님

에게 절의 창건을 하게 했다는 것이 사찰창건 배경설화로 전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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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일주문을 지날 때만 해도 그윽한 산사의 풍취를 느낄 수 있었는데, 얼마 가지않아 눈앞에 보이는

"백련당白蓮堂"이란 공양간을 보는 순간 무엇인가 어색하고 잘못되었다는 인상을 지울 수가 없었다.

하얀 대리석 현대식 각진 건물이 사찰전각의 정면에 버티고 서있어 부조화의 극치를 보여주었기 때문이다.

사진 조차도 찍기 싫어 서둘러 오르니 방금전의 유감을 씻어내는 소담스런 풍경이 펼쳐진다. 

장독으로 둘러싸인 청연당(靑蓮堂)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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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리도 굽히고, 머리도 숙이고, 마음도 내려 놓아야(下心) 들어 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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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래에 축조된 건물이긴하나 기둥에 쓰인 목재들은 자연적인 미를 그대로 간직하고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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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승사 대웅전

 

대웅전의 주련

-일체만물 합일된 부처님법의 세계-

楊柳稍頭甘露灑
(양류초두감로쇄)
蓮華香裏碧波寒
(연화향리벽파한)
七寶池中漂玉子
(칠보지중표옥자)
九龍口裡浴金仙
(구룡구리욕금선)

버들로 머리 감고 감로를 뿌리고
연꽃 향기속에 푸른 파도가 서늘하네
칠보 연못에 옥동자를 띄우고
아홉 용이 입으로 금빛신선을 목욕 시키네.
 
대승사 대웅전의 주련 내용도 부처님을 찬탄하는 극치의 시어들로 엮어져 있다.첫 연에서의
불가사의한 장면묘사는 버들이 머리를 감을만큼 많은 양의 감로수로 극치를 이루고 있으며
둘째연도 마찬가지의 맥락에서 이해 할 수 있다. 연꽃 향기와 푸른 파도의 대조는 대조의 경지를 넘어 일체만물의 합일을 드러내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칠보 연기에 옥동자를 띄운다는
불가해의 장면도 부처님의 위대한 법의 세계속에서만 가능한 일이다.
 
이 시의 가장 핵심이 되는 넷째연에서도 불가해의 세계속에서 펼쳐지는 아름다운 공양의 장면이

보인다. 아홉마리의 용이 금빛 부처님을 목욕 시키는 장면을 한번 상상해 보자. 용이라는 상상의

동물이 갖는 신성성과 부처님을 극존칭으로 형상화한 금선의 절대성이 어우러져 목욕을 시킨다는

행동으로 상상을 현실화시킨 초탈한 표현 앞에서 우리는 짜릿한 법열마저 느끼게 되는 것이다.

 

그러니까 이 주련은 불가사의의 세계를 부처님이라는 절대적인 법의 상징 속에서 매우 현실적으로

인식시키고 있는 셈이다. 이는 이것이다 저것이다를 구별하지 않고 모든 개체의 합일과 분리 자체가 하나의 법

안에 있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다 (권영한 先生解說)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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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웅전의 아름다운 문살

대웅전은 꽃창살이 예쁘게 조각되어 있다. 서로 다른 두 방향에서 짜면서 나타나는 빗살무늬에  꽃조각을

덧붙인 꽃문살의 창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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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웅전

부처님께 예를 올리고 고개를 들면 화려하고 섬세한 목각 후불탱이 두눈 가득 들어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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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후기에 조성한 아름답고 섬세한 목각의 후불탱으로, 그 관계 문서 등과 함께 

보물 제575호로 지정되었다. 이 목각탱의 크기는 높이 4m, 너비 3m이고 
11개의 판목으로 구성되었다. 본래 영주 부석사(浮石寺)에 봉안되어 있던 것을

조선말에 부석사가 폐찰상태에 놓여있을 때  대승사 스님들이 옮겨왔던 것이다.

 

그 후 다시 부석사에 스님들이 살게 되고 이 스님들이 고종6년(AD1869) 탱화의 반환을

요청하게 되자 두 절 사이에 한동안 절충을 벌이다가 7년만인 고종13년(AD1876) 대승사가

부석사의 조사전 수리비용을 대주기로 하고 일단락을 짓게 되었다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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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연당(靑蓮堂)

사대부의 안채를 연상케 하는 모습이다. 종무소와 주지스님의 거처로 사용되고있다.

마당에는 석등과 달리 마당에 불을 피워 올려놓는 맷돌인 2개의 노주석(불우리)이 균형감 있게 서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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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승선원(大承禪院)        선당(禪堂)은 무량수전(無量壽殿)이라고도 하는데, H자 모양의 복합건물이다.

한 편에 걸려있는 천강사불 지용쌍련(天降四佛 地湧雙蓮)이란 편액이 이 절의 역사를 함축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앞서의 사찰 창건설화에서 밝혔듯이 사면에 불상이 새겨진 바위(四佛岩)가 산꼭대기에 내려앉자 왕이

절을 세우고 스님을 모셨다고 한다.이 스님이 입적한 뒤 마을 입구에 묻었더니 무덤에서 두 송이 연꽃이

피어올랐다는 이야기도 전해온다. 그래서 1929년 문을 연 대승사 선원의 이름은 쌍련선원(雙蓮禪院)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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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승선원(大承禪院) 편액은 월산 조실스님의 글씨다.

 

성철과 청담은 이곳 대승사에서 광복후 불교계에 큰 영향을 미친 봉암사 결사의 기틀을 다졌다. 대승사에서

성철 스님은 불자들이 스님에게 3배 하는 의식을 시작했으며, 그 유명한 장좌불와를 시작한 곳이다. 장좌불와란

밤낮 방바닥에 등을 대지 않고 단 한 순간도 잠을 자지 않은 채 꼿꼿이 참선의 자세로 앉아서 정진하는 수행법이

다.성철 스님은 선방인 쌍련선원에서 참선할 때나 해제후 산내 암자인 묘적암에서 장좌불와를 할 때도 날마다 꼭

나무 한 짐은 하는 울력을 했다고한다. 종정이신 법전 스님이 깨달음의 빛을 본 것도 이곳이다.

 

관음보살좌상 (문화재청 자료)

 

대승선원에는 관음보살좌상(보물991호)이 모셔져 있다. 그러나 그 안이 선방이어서 일반인이 참배하기는
쉽지않다.선당은 스님들이 참선수행하는 곳이므로 참배객의 출입이 일절 금지되어 있다.

따라서 이 관음보살상을 직접 친견할 수는 없다.일반인의 시각에서 불상은 선조가 남긴 문화재로서 관람의

대상이지만, 수행자의 입장에서는 절대적인 신앙의 대상이다. 이러한 입장차이로 인해 많은 성보문화재들이

공개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가능하다면 극락전 등에 안전하게 봉안하여 참배객으로 하여금 보다 두터운

불심을 일으킬 수 있는 기회를 누렸으면 하는 바램이다.(전통사찰총서 17의 일부내용 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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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원 앞마당의 장독대

 

성철과 청담이 수행가풍을 일으킨 쌍련선원은 6·25전쟁과 불교계 풍파로 그 맥이 끊겼다가 10여년 전 다시

옛 모습을 찾았다. 불국사 조실을 지낸 월산 스님이 이곳 대승사 총지암 토굴에 주석하면서 쌍련선원의 선풍을

다시 일으켰다 .근세들어 성철, 청담, 월산으로 이어지는 선풍은 여느 선원에 비하기 어려울 정도로 엄격하다.

하안거와 동안거 때 선방 규율은 엄격하고, 수행 시간도 많아 웬만한 선승들은 입방할 엄두를 못내는 곳이다.

 

산철(동안거 하안거를 제외한 나머지 달) 삼칠일(21일)의 용맹정진 때는 입방한 선승 가운데 30~40%가 못버틸 
정도로 수행 도량의 면모를 유지하고 있다. 기본은 21일 용맹정진이고 익숙해지면 100일로 들어가는데 하루
세 끼 공양하는 시간 3시간 만 자유시간이고 나머지 21시간을 선정에 든다한다.
만약 정해진 시간에서 10분 만 늦어도 방석을 치워버린다.

빼는 사람도 자신의 좌복이 없어진 걸 본 수좌도 서로 묻지도 답하지도 않는다.남한테 보이기 위해서가 아니라
자신과의 약속이며 자신과의 싸움임을 서로 잘 알기 때문이다.

용맹정진은 자신을 거의 죽음 직전 까지 내모는 극한 수행법이다.워낙 힘든데다 육체가 생명인 수좌들의 건강을

급격하게 해칠 수 있어 대부분의 선원에서 사라졌다.세기로(?) 소문난 대승선원 답게 이곳은 기본이 3주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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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승선원의 담장은 기왓장을 겹겹이 쌓아 올렸는데 그 모습이 벌집 모양으로 정겹다.

저 공간으로 몸은 들어가지 못하나 눈길과 마음은 걸림없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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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방옆의 마당은 알이 작은 쇄석으로 깔려있어 조심스레 걸어도 발자국 소리가 들린다.

수행중이니 외부인의 출입을 삼가라는 안내문이 걸려 있는지라 죄송스런 마음이 들지만, 살금살금 들어가 몰래

들여다 보았다.(어느 스님이 미닫이 문을 탁!하고 닫으시는데 큰 죄지은 죄인된 기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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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정리된 우산대를 보니 선원의 엄격한 규율과 질서를 알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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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색창연한 극락전(極樂殿)의 단아한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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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행중이라 출입을 금지하는 밧줄이 처져있어 내부를 볼 수 없으나. 퇴색된 단청에서 우러나오는 멋스러움이

발길을 오래 머물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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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부전(冥府殿)역시 출입이 금지되어있으나 고색창연함과 단아함은 극락전과 다르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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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산 조실스님이 계셨던 총지암으로 오르는 돌계단.

지금은 대중들의 선방으로 활용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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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지암(總持庵)의 편액과 단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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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지암에서 바라본 대승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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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지암을 내려와 주차장 옆에 있는 무료찻집.

대승사는 베푸는데 인색하지 않은 사찰이다.

사실 나는 대웅전을 둘러보고 나니 점심시간을 넘겨버려 배가 출출한 터였다.

대웅전 마당에서 인자하게 생기신 보살님 한 분을 만났는데, 대승사의 안내 팜플렛과 신년 달력을 부탁드리니

흔쾌하게 자기를 따르라 하신다.청련당으로 들어가시더니 내가 부탁한 것을 들고 나오시면서 점심공양을 하고

가라 하시기에 처음엔 시간을 핑계되어 거절하였다.배고픔이 나그네의 얼굴에 비쳐졌음인가 보살님은 한사코
나를 공양간( 그곳이 이곳 대승사에 들어서면서 눈에 제일 거슬린 백련당이었다)으로 데리고 가신다.

 

공양간 안에는 스님과 여신도 몇 분이 늦은 점심 공양중이었는데,그릇에 떠놓은 밥은 차우니 국수를 들라하신다

나도 절밥을 몇 번 먹어봤지만 대승사에서 처음으로 국수로 공양했다. 그런데 이 국수가 인기가 있는 모양이다.

얼마나 좋아했으면 스님들 얼굴에 저절로 웃음이 번진다고 해서 ‘승소’(僧笑)라는 이름을 붙였다한다. 

 

편안하고 인자한 보살님 덕에 맛있는 음식과 아름다운 베품의 기억을 담고 발길을 돌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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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아가는 길에 보이는 일주문. 들어올 때 보이는 반대편에 불이문이란 편액이 걸려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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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이문"不貳門"......... 둘이 아닌 하나라는 것을 대단히 강조하고 있다.

일반적으로 두 이는 "二"를 쓰는데, 조작이나 정정을 방지하는 "貳"를 쓴 점이 그러하다.

"不二門"의 편액은  지리산 "천은사"를 비롯한 여러사찰에서 볼 수 있다.

불이(不二)란 둘이 아닌 경계를 말하며 절대 차별없는 이치를 나타낸다.

승속(僧俗)이 둘이 아니요, 세간과 출세간이 둘이 아니며,

중생계와 열반계 역시 둘이 아니니, 일체중생이 개유불성(皆有佛性)하여

이 문을 들어서면서 부처님의 이치를 깨우치라는 뜻이다.

 

不貳니 나도 부처가 되어 사바세계로 다시 나간다............

출처 : 쓸쓸히 채워져 있고 따뜻이 비워진 숲
글쓴이 : 들이끼속의 烏竹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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