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선은 유교를 통치이념으로 내세워 건국한 나라이다 보니 사회 모든 분야가 몹시 경직되어 있었다. 특히 남녀문제는 ‘남녀칠세부동석’이라는 금언에서 보듯이 엄격하다 못해 잔혹하기까지 했다. 성 문제가 오죽 엄중했으면 단원 김홍도는 예천현감 자리를 비워둔 채 일본으로 밀항하여 1년 동안이나 오매불망 그리고싶어 하던 춘화를 실컷 그리고 돌아왔을까. 연애를 금기시하여 결혼도 반드시 중매를 통해 이뤄졌는데, 대부분 일면식도 없는 상태에서 혼인을 하다 보니 부부의 정이 돈독하지만은 못했다. 이러한 풍습은 우리 부모 대에까지 이어져 축첩에 빌미를 제공했다. 남녀상열지사는 왕실이나 사대부 댁에도 만연했다. 희대의 바람둥이 심프슨 부인과 사랑에 빠져 왕관을 버린 영국 황태자 윈즈 공의 로맨스도 실은 양녕대군을 벤치마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