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지혜

고속버스만큼 싼 비행기, 어떻게 가능했을까

깊은산속 2012. 2. 23. 21:53

 

우리 항공사의 라이벌은 타항공사 아닌 육로 운수업체" 자유좌석제로 回航시간 단축, 값 싼 운임에도 업계 최고 수익^^^^^*
나이키를 경쟁자로 본 소니, MP3 등 아웃도어 제품 개발… 소비자 지갑 점유율 높여

이명우 한양대 특임교수·경영학박사

필자가 미국에서 근무할 때 어바인에서 피닉스까지 급하게 가야 할 일이 생겨 사우스웨스트 에어라인(Southwest Airline)을 이용한 적이 있다. 탑승수속을 했는데 지정 좌석 없이 탑승구역만 표시된 플라스틱 표를 건네받았다. '저가(低價) 항공사라고 하더니 역시 하는 게 시원치 않구나' 생각했다. 음료수 사 먹으려고 줄을 빨리 서지 못했던 필자의 일행이 비행기에 탑승했을 때는 자리가 불편한 가운데 좌석 몇 개만 띄엄띄엄 남아 있어 함께 앉아 갈 수 없었다. 약간 기분이 나빠지려던 순간, 기내에서 예상하지 못했던 이벤트가 진행됐다. 연말을 맞아 가족사진을 갖고 있는 고객에게 선물을 주는 것이었다.

펀(Fun)경영으로도 유명한 이 항공사가 지정된 좌석을 배정하지 않는 데는 숨은 이유가 있다. 미국 국내선 항공기의 경우 공항에 도착해 승객들을 내려주고, 새 행선지로 향하는 승객들을 태워 다시 출발하는 데 걸리는 시간이 보통 45분 정도이다. 반면 이 항공사는 승객들이 미리 줄을 서게 해서 15분으로 단축하는 데 성공했다. 공항에서의 비행기 대기시간을 줄이면 그만큼 많은 시간을 운항할 수 있기 때문에 업계 평균보다 높은 효율을 올릴 수 있다. 이것이 사우스웨스트 에어라인이 다른 항공사보다 값싼 항공료를 받고도 업계 최고의 수익을 낼 수 있었던 전략 중의 하나이다.

사우스웨스트 에어라인이 저가항공사를 시작할 때인 1971년, 텍사스주의 댈러스와 산안토니오 간의 첫 항공편을 취항할 때로 돌아가 보자. 당시 같은 항로를 오가는 항공권의 가격이 선두권 항공사의 경우 100달러 안팎이었고 가장 저렴했던 다른 항공사는 62달러였다. 만약 당신이 사우스웨스트 에어라인의 경영자라면 항공료를 얼마로 책정할 것인가? 놀랍게도 이 회사가 결정한 항공요금은 겨우 15달러였다. 투자자들은 "단 몇 달러라도 더 받지, 가격이 너무 낮은 것 아니냐"며 항의했지만 경영자의 대답은 단호했다. "우리는 다른 항공사와 경쟁하는 것이 아니라 바로 그레이하운드(미국 전역 교통망을 가진 고속버스)와 경쟁합니다!"

이 항공사는 항공여행과 육로여행으로 나뉘었던 기존 여행시장의 경계를 허물고 다른 항공사가 아닌 육로 운수업체를 경쟁자로 본 것이다. 사우스웨스트 에어라인은 단순히 싼 가격으로 다른 항공사의 승객을 빼앗아 오려고 하지 않았다. 대신 항공료가 비싸서 고속버스를 이용하던 소규모 자영업자나 학생들을 새로운 고객으로 인식하고 그들을 만족시키기 위한 낮은 운임을 책정했다. 그리고 낮은 운임으로도 경쟁력을 확보하기 위해 여러 가지 혁신적인 방안을 도입했다. 항공기 회항(回航)시간을 단축하기 위한 자유좌석제, 항공기 유지 관리비 절감을 위한 단일 항공기 기종 사용, 항공여행의 즐거움을 주기 위한 펀(Fun)경영 등의 전략을 수립했다. 만약 사우스웨스트 에어라인이 경쟁자를 고속버스가 아닌 기존의 항공사로 보았더라면 아마도 다른 항공사보다 싼 항공료를 책정했을 것이고, 이 경우 항공사 간의 가격전쟁을 불러와 항공산업 전체를 어렵게 하고 신생 항공사인 사우스웨스트 자신들도 어려움에 봉착했을지 모를 일이다. 이렇게 누구를 경쟁자로 보는가 하는 것은 기업이 전략을 수립하는 데 매우 중요한 성찰이다.

               ▲ 일러스트=정인성 기자 1008is@chosun.com

 

사우스웨스트 에어라인이 고속버스를 경쟁자로 인식해 저가항공의 지평을 연 것과는 달리 기존 고객의 라이프스타일을 꿰뚫어 본 뒤, 경쟁자를 새롭게 정의하고 새로운 전략을 만들어낸 사례도 있다. 필자가 소니에서 일을 시작하며 소니 본사를 처음 방문했을 때 참 궁금한 점이 있어 물어봤다. "소니는 도대체 어느 회사를 경쟁자로 여기고 있는가?" 놀랍게도 그 답은 "소니의 경쟁자는 나이키(Nike)"였다. 처음에는 이 말이 당시 글로벌 넘버원이었던 소니가 "전자업계에 우리의 경쟁자는 더 이상 없다"라는 자신감을 표현한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이런 경쟁구도의 인식이 만들어내는 소니의 새로운 전략을 알게 되면서 신선한 충격을 받았다. 당시 다른 전자회사들이 전자업계 간의 경쟁구도만을 생각하고 있을 때, 소니는 소비자 중심으로 경쟁구도를 인식하고 있었던 것이다.

소니는 나이키 운동화를 신고 야외에서 활동하는 소비자가 많아질수록 집안에서 엔터테인먼트를 즐기는 소비자는 상대적으로 줄어들 것으로 예상했다. TV 같은 가정용 전자제품에서 절대적인 강세를 보였던 소니는 전자시장에서의 시장 점유율(Market Share)보다 소비자들의 제한된 가처분 소득을 대상으로 지갑 점유율(Wallet Share)을 높이는 데 관심을 갖고 있었다. 그 결과 소비자를 코쿤 스타일(Cocoon Style, 누에고치처럼 집안에서 웅크리고 있는 모습)과 야외 활동을 주로 하는 아웃도어 스타일로 나누고 나이키 제품을 사는 사람처럼 야외 활동을 많이 하는 소비자들도 소니제품에 지갑을 열게 하겠다는 전략을 세웠다. 이게 바로 소니의 '유비쿼터스 밸류 네트워크(UVN) 전략'이다. 소비자들이 집 밖에서도 음악, 영화, 게임 등의 콘텐츠를 즐길 수 있도록 하겠다는 것인데 이 유비쿼터스 전략은 소니가 기존의 전자업체가 아닌 나이키를 경쟁사로 인식한 데서 나온 것이다.

경쟁자가 누구인지, 시장이 어딘지에 대한 정의도 없이 업계 최고 또는 세계 최고가 되겠다는 목표는 공허한 메아리로만 남을 뿐이다. 진정한 경쟁자가 누구인지에 대한 고민이 있어야 제대로 된 전략이 나온다. 업계 최고의 회사가 되려면 눈에 보이는 경쟁자들뿐 아니라 잠재적 경쟁자들도 볼 수 있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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