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 삿갓

신선이 된 김삿갓

깊은산속 2008. 7. 17. 10:40
 

  강진에서 용천사를 거쳐 가지산 보림사까지, 200리 길을 오는데 보름이나 걸렸다. 
어딘지는 모르지만 몸에 이상이 있어 걸음이 더뎌졌기 때문이었다. 가지산은 예로부터 
‘천하의 기운에 땅에 떨어져 내를 이루고 공중에 쌓여서는 산을 이룬 곳’이라는 
찬사를 받아왔을 정도로 경관이 빼어났다. 보림사는 가지산의 정기를 온통 다 받은 
명찰이었다. 보림사를 한 바퀴 둘러본 김삿갓은 풀밭에 누워 피로를 달래며 한탄의 
시를 읊었다.
  窮達在天豈易求     잘살고 못사는 것은 천명이라 맘대로 안 되는 법
  從吾所好任悠悠     나는 내 뜻대로 유유자적 살아왔네.
  家鄕北望雲千里     고향하늘 바라보니 천릿길 아득한데
  身勢南遊海一漚     남녘을 헤매는 신세 물거품과 같도다.
  掃去愁城盃作箒     술잔을 비로 삼아 시름을 마캉 쓸어버리고
  釣來詩句月爲鉤     달을 낚시 삼아 시를 건져 올리면서
  寶林看盡龍泉又     보림사 용천사를 두루 구경하고 나니
  物外閑跡共比丘     내 마음 욕심 없어 승려와 다름없네.
  그로부터 10여일 뒤, 김삿갓이 화순 동복면에 있는 신석우의 집을 찾아들었을 
때는 몸을 가누기 어려울 정도로 쇠약해져 있었다. 신석우는 뒤안 초당에 거처를 
마련해준 뒤 후하게 대접했다. 다음날 신석우는 김삿갓의 요청에 따라 그를 적벽
강으로 데리고 가 놀잇배를 하나 빌려주었다. 하늘은 맑고 강바람은 시원한데, 
강을 둘러싸고 있는 절경은 가히 호남팔경 가운데 으뜸이라 할만 했다. 적벽강이 
오죽 아름다우면 화순군수 자리를 두고 서로 오려고 다투었겠는가. 일엽편주를 
타고 사방을 둘러보니 예가 바로 선계(仙界)였다. 
  ‘아하, 여기가 내 안식처로는 적격이로구나.’
  김삿갓은 배 바닥에 드러누워 두둥실 흘러가는 뭉게구름을 바라보고 있었다. 
하늘과 구름은 30여 년 전 영월 땅을 떠날 때의 그 하늘이요 그 구름이언만, 
어느새 세월이 흘러 죽음을 눈앞에 둔 노년이 되었단 말인가. 
  지나간 일들이 주마등처럼 스쳐갔다. 가장 먼저 떠오른 건 강계 제일의 명기 
추월이었다. 김삿갓은 추월을 떠올리자 너무나 가슴이 아려 주르르 눈물을 흘렸다. 
양양 땅 어느 산골 훈장의 딸 홍련과 보낸 하룻밤도 생생했다. 방랑길에 맺은 첫 
인연이었다. 첫 경험인데도 홍련은 김삿갓에게 커다란 운우지락을 안겨주었다. 
금강산 장안사의 불영암에서 공허스님을 만나 시 짓기 내기를 하던 추억도 
새로웠다. 초대면인데도 백년지기처럼 뜻이 통하여 몇 달간 어울려 지낸 일은 
이후 두고두고 새로운 인연으로 연결되었다.
  함흥기녀 소연을 만나 행복하기 그지없는 6개월을 함께 보낸 추억도 잊을 수
없었다. 10년 만에 영월 어둔리에 있는 본가에 들러 처음 만난 둘째아들에게 
익균이라는 이름을 지어준 기억은 가슴을 에었다. 그리고는 이내 방랑길에 
올랐으니 어린 아들이 얼마나 큰 충격을 받았을까? 개풍 진봉산에서 철쭉꽃을 
꺾으려다 벼랑에서 떨어진 일도 생생하게 떠올랐다. 천석사에서 요양을 하고 
있을 때 반년 동안 정성껏 간호를 해준 안산댁의 정성도 잊을 수 없었다. 곡산 
땅 어릴 적 살던 동네를 찾아 동무들과 겨울을 났던 일도 즐거운 추억으로
떠올랐다. 평양갑부 임진사 댁에서 동기 삼월과 뼈가 흐늘흐늘해질 정도로 즐긴 
방사는 워낙 화끈하여 그 동안 가장 자주 떠오르곤 했었다. 
  객점을 하던 애비 일로 평양기생 죽향을 만나 함께한 시간도 흐뭇한 추억이었다. 
상중이라 비록 살을 섞을 수는 없었지만 정은 누구보다 듬뿍 들었었다. 꿈에 어머니만 
현신하지 않았더라면 얼마를 더 오래 머물렀을지 모르는 일이었다. 홍성까지 내려가 
어머니의 부음을 확인한 일은 인생무상을 절실하게 해줬을 뿐 크게 슬프거나 
허망하지는 않았다. 부여의 몽중몽이란 객점에서 퇴기 연월과 즐긴 닷새간의 추억은 
마지막 일이라 가장 생생했다. 남정네 경험이 많았던 덕에 연월은 온갖 기교로 힘이 
떨어진 김삿갓의 음심을 북돋워주었다. 진주에서 우연히 옛 길동무 우국지사를 만나 
그의 소개로 강진 안 진사 댁에서 한겨울 신세를 진 일도 새삼스러웠다. 결국 덕분에 
신석우라는 초대면의 선비를 만나 이렇게 대접을 받고 있지 않은가.
  김삿갓은 회고를 마치고는 지난 일생을 조망하는 시를 읊었다.
  鳥巢獸巢皆有居     새도 짐승도 제 집이 있건만
  顧我平生獨自傷     나는 한평생 홀로 슬프게 살아왔네.
  芒鞋竹杖路千里     짚신에 지팡이 짚고 천리길을 떠돌며
  水性雲心家中方     물처럼 구름처럼 가는 곳이 내 집일세.
  尤人不可怨天難     사람도 하늘도 원망할 일은 아니로되
  歲暮悲懷餘寸腸     매년 해가 저물 때면 홀로 슬퍼했다네.
  이후에도 시는 열네 연이나 계속되지만, 이미 우리가 따라온 발자취를 정리한 
것이므로 생략한다. 시를 다 지었을 즈음에는 이미 의식이 가물가물해지고 있었다. 
어느 순간, 김삿갓은 마음이 환해지는 듯한 황홀함을 느꼈다. 이승의 의식이 
단절된 그의 귀에 어디선가 마지막으로 짧은 시 한 구절이 들려왔다.
  乘彼白雲     저 흰 구름을 타고
  羽化登仙     신선이 되어 하늘로 올라간다.
  때는 강화도령 철종 14년(1863) 3월 29일, 향년 57세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