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 삿갓

강계 하늘에 秋月이 滿乾坤하니

깊은산속 2010. 8. 10. 09:42

 적유령고개가 나타났다. 강계의 관문이었다. 고개가 어찌나 높은지 쳐다보기만
해도 숨이 막혔다. 천신만고 끝에 만데이에 오르니 저 멀리 북쪽으로 험산준령에
둘러싸인 광활한 고원지대가 나타났다. 묘향산맥 낭림삼맥 강남산맥에 둘러싸인
고원은 서도 제일의 웅자(雄姿)를 자랑하고 있었다. 가히 산중왕국이었다. 강계
고원은 넓이가 제주도의 3배나 된다. 조선 3대 색향 가운데 으뜸으로 꼽히는 강
계는 남남북녀라는 용어의 원산지이기도 하다. 전국에서 명포수를 가장 많이 배
출한 곳도 강계였으니, 조선시대에는 ‘강계포수’ 하면 호랑이도 놀라 물고 가던
황소를 놓고 달아난다 했다.

  고개를 넘어 강계읍내를 향해 길을 가자니 독로강이 나타났다. 신라가 삼국통
일이라는 미명하에 고구려를 무너뜨리자 강계 땅은 한때 무주공산이 되어 여진
몽골 말갈족의 각축장이 되었다. 와중에 수많은 여인들이 오랑캐의 노리개로 끌
려갔다. 나라 잃은 백성들의 설움이었다. 몽골인들은 납치해오는 외국여자들을
뚜루개[禿魯花]라 했는데, 독로강은 뚜루개에서 유래한 한 많은 이름이었다. 보
다 못한 강계인들은 스스로 무예를 연마하여 오랑캐의 침입을 막아내고 여인들
을 지켰다. 그런데 조정에서는 이처럼 상무정신이 강한 서도사람들을 경계하여
벼슬길에 받아들이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행정편의조차 제대로 제공하지 않았
으니, 홍경래의 난도 이러한 차별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김삿갓은 강산을 두루 살피다가 해질녘에야 나룻배를 타고 독로강을 건넜다.
언젠가 시골 장터에서 심심파적으로 관상을 보았을 때 관상쟁이가 ‘강계에 가면
귀인을 만나 즐거움을 누릴 것’ 이라던 말이 생각나 은근히 기대에 부풀었다. 한
서당에 들려 하룻밤 신세를 진 김삿갓은 이튿날 조반을 들자마자 관서팔경의 하
나인 인풍루(仁風樓)로 향했다. 김삿갓은 관서팔경 가운데 이미 절반 이상을 보
았지만, 인풍루는 그 어느 곳보다 웅장하고 수려한 누각이었다. 천애절벽 아래로
는 독로강과 북천이 합수하여 도도히 흐르고, 강 건너 들판 가운데 우뚝 서 있는
독산은 인풍루와 구색을 맞추기 위해 일부러 세워놓은 듯 적절하게 포치(布置)되
어 있었다. 인풍루에는 유독 국경을 수비하던 무장들이 고향과 가족을 그리며 지
은 현판시가 많이 걸려 있었다.

  그날따라 겨울인데도 날씨가 따스하여 많은 유람객들이 인풍루를 찾았다. 그
중에는 여인네들도 상당히 많았는데, 대부분 ‘강계미인’이라는 명성에 어울리게
미색이 뛰어났다. 널따란 누각에서는 여기저기서 바둑이나 장기를 두는 노인네
들도 많았다. 점심도 굶어가며 산천 구경에 빠져 있는데, 어느듯 해가 뉘엿뉘
엿 기울고 있었다. 어디서 노랫소리가 들려와 눈길을 돌리니, 언제 왔는지 기
생차림의 한 여인이 동기(童妓)와 대거리로 번갈아 노래를 부르고 시를 읊었
다. 여인의 차례가 되자 낭랑한 목소리로 한시를 읊기 시작했다.

  靑山影裡碧溪水
  容易東流爾莫誇
  一到滄海難再見
  且留明月暎娑婆
 
  바로 송도 명기 황진이가 당대 제일의 풍류객이자 왕실 종친인 벽계수를 꼬신
유명한 연시(戀詩)였다. 당초 황진이는 우리말 시조로 노래했었다.

  청산리 벽계수야 수이 감을 자랑마라.  
  일도창해하면 다시 오기 어려우니
  명월이 만공산할 제 쉬어감이 어떠하리.

  누군가 이 시조를 한시로 번역하여 「해동소악부」에 실어놓았는데, 기녀는
거기까지 학문이 닿아 있는 것이다. 어디선가 강계에는 추월(秋月)이라는 기생
이 있어 빼어난 자태와 함께 시문이 깊다는 얘기를 들은 적이 있었는데, 저 기
녀가 바로 추월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윽고 기녀가 몸을 돌려 누각을
내려가려 하자 김삿갓은 조급해졌다. 얼굴 한번 제대로 못 보고 이대로 보내면
전생부터 이어져온 인연 하나를 영영 놓치게 되지나 않을까 해서였다.
  “얘, 산월아. 잠깐 나 좀 보자꾸나.”
  김삿갓은 기녀가 부르던 동기의 이름을 기억하고 있었다. 기녀는 등을 돌린 채
그 자리에 서 있고 산월이란 동기가 다가왔다.
  “내 편지를 써줄테니 네 주인에게 좀 전해주거라.”
  김삿갓은 바랑에서 지필묵을 꺼내 ‘榴 金笠’이라 써서 건네주었다. 동기는 편
지를 가지고 말없이 상전에게 다가갔고, 동기가 이르자 기녀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누각을 내려가 어둠속으로 사라졌다.

  옛날 황진이가 상종가를 치고 있을 때, 거유(巨儒) 소세양이 만월대에 유람 왔
다가 황진이의 자태에 뿅 가서는 ‘榴’ 자를 써서 하인을 시켜 보냈다. ‘석류나무
유’라는 풀잇말을 한자로 슬쩍 바꿔 ‘碩儒那無榴’, 즉 ‘큰 선비인 내가 예 왔는데
한번 안 줄래?’ 하는 수작이었다. 이에 황진이가 즉각 그 유혹을 받아들여 ‘漁’
자를 답신으로 보내왔다. 한문께나 안다는 사람들이 흔히 써먹는 시대적 수작으
로 ‘고기 잡을 어 → 高姑自不語’, 즉 ‘고급기생은 함부로 주는 게 아니오.’ 라는
대답이었다. 현대에 와서도 여인네 치고 처음부터 쉽게 준다고 대답하는 사람이
있던가? 그 길로 두 사람은 세기의 로맨스를 불살랐던 것이다.

  그 고사를 한번 써먹어본 것인데, 한참 만에 보내온 답장은 예상을 뛰어넘어
매우 준열했다.
  ‘榴字書翰則 巨儒 蘇世讓之書翰也. 勿爲剽窃. 秋月’
  ‘榴’ 자 편지는 거유 소세양이 이미 써먹었던 수법이니 함부로 표절하지 말라
는 준엄한 꾸지람이었다. 강계에 가면 좋은 인연이 기다리고 있을 것이라던 관
상쟁이의 점괘도 아직은 때가 아닌 모양이었다. 서두른다고 아니 될 일이 될 턱
은 없을 터, 김삿갓은 느긋하게 절 구경을 다니며 때를 기다렸다. 그 기녀가 추
월이었음을 확인한 게 유일한 소득이었다.

  김삿갓이 심원사에 들렸을 때였다. 절마당으로 들어서니 한 노승이 반가운 표
정으로 다가오며 인사를 했다.
  “아니 삿갓선생께서 이 깊은 산중까지 어인 일로 오셨소?”
  “예, 스님도 만강하시지요? 그런데 저를 어이 아시는지요?”
  “소승은 금강산에서 공허 스님을 모시고 있던 범우화상입니다. 조선의 노승
가운데 삿갓선생을 모르면 간첩이지요. 그런데 강계에는 글을 하는 사람이 별
로 없어 삿갓선생을 잘 알아보지 못할거요. 글이라면 추월이라는 기생이 제일
이지요.”
  학문이 깊은 줄은 알았지만 그 정도인가 싶어 더욱 관심이 깊어졌다.
  “잠시 시문을 농하는 모습을 본 적은 있지만 그 정도로 능한 줄은 몰랐습니
다.”
  “며칠 전 불공을 드리러 왔기에 삿갓선생께서 공허 스님과 시 짓기 내기를
했던 에피소드와 함께 삿갓선생이 조선 제일의 시선이라는 이야기를 들려줬더
니 얼굴을 붉히며 매우 놀라더이다. 두 분 사이에 무슨 사연이 있었던가요?”
  “조선 제일의 시선이란 말씀은 과찬이시고요, 추월이란 기생과는 그저 잠시
스쳤을 뿐입니다.”
  김삿갓은 범우화상의 간곡한 권유로 심원사에 보름 동안 머물며 인근 명승
지도 돌아보고 밤이면 범우화상과 시담도 나누었다.

  산을 내려온 김삿갓은 허름한 객점에 여장을 풀고 독서에 열중했다. 살을 에
는 강추위로 나들이가 편치 않아서였다. 그러던 어느 날, 두툼한 솜두루마기를
걸친 한 여인이 김삿갓을 찾아왔다. 화장기 하나 없는 이십대의 여인은 초대면
이었다. 그쪽에서 먼저 김삿갓을 알아보고 인사를 올렸다.
  “저는 강계기생 추월이라고 합니다. 전날 인풍루에서는 미처 몰라 뵙고 큰 결
례를 범했습니다. 너그러이 용서해주십시오.”
  “하하하. 자네는 시가에도 뛰어나고 학문도 깊다던데, 이제 보니 예절도 제법
이네그려. 날이 추우니 우선 안으로 좀 들어오게.”
  방안에 들어선 추월은 김삿갓에게 큰절을 올리더니 다시 한 번 용서를 빌었다.
추월로서는 누군지 모르고 김삿갓을 매정하게 몰아세운 일이 내내 마음에 걸리는
모양이었다.
  “이 사람아. 자네 같은 천하절색이 찾아준 것만도 삼생이 기쁠 일인데 용서라
니, 지난 일일랑 다 잊게나.”
  추월은 심원사에 불공드리러 갔다가 범우화상으로부터 김삿갓의 얘기를 듣고는,
부끄럽고 죄송하여 그날 이후 하루도 빼놓지 않고 강계읍내의 객점을 샅샅이 뒤
지기 시작했다는 것이었다.
  “사죄하는 뜻에서 오늘부터 선생님을 저희 집에서 모시고자 하오니 부디 허락
해주시옵소서.”
  황진이의 ‘漁’ 자 화답보다 훨씬 진솔한 접근이었다. 몇 차례 실랑이 끝에 김삿
갓은 못 이긴 척 추월을 따라 나섰다. 강경 제일의 기녀가 행색이 초라한 노인을
모셔가는 모습에 객점 주인의 입이 다물어지지 않았다.

  추월의 집은 인풍루가 아득히 바라보이는 산기슭에 있었다. 집은 초가였지만
드넓은 마당에는 몇 백 년 된 적송 한 그루가 우뚝 서 있어 추월의 기상을 엿
보게 했다.
  “소나무가 자네를 닮은건가, 자네가 소나무를 닮은건가?”
  “이 소나무 때문에 시세보다 몇 갑절 더 주고 이 집을 샀답니다. 매일 아침
눈을 뜰 때마다 저 노송의 독야청청을 배우고자 노력하고 있사옵니다.”
  참으로 정신이 맑은 여인이었다. 바람벽에는 시 한 폭이 걸려 있었다.

  富貴功名可且休     세상의 부귀영화 탐내지 않고
  有山有水足遊遊     산 좋고 물 좋은 곳에서 노닐어보세.
  與君共臥一間屋     정든 임 모시고 호젓한 오두막에서
  秋風明月成白頭     갈바람 밝은 달빛 아래 늙어나지고.

  기생 조운이 남지정이라는 선비에게 보낸 연시였다. 추월이 떠다주는 물에
소세를 하고 나니 옷장에서 새 솜옷 한 벌을 꺼내 내밀었다.
  “범우화상님으로부터 선생님 말씀을 듣고 언젠가는 반드시 한번 모시겠다는
일념에 제가 직접 지었습니다. 인풍루에서 얼핏 뵌 모습을 떠올리며 치수를 가
늠했는데, 잘 맞을지 걱정이옵니다.”
  김삿갓은 벅차오르는 감동을 주체하지 못해 한동안 고개를 숙이고 앉아 있었
다. 일면식도 없는 여인으로부터 이런 후대(厚待)를 받아보기는 난생 처음이었다.
이윽고 감정을 가라앉히고 옷을 입어보니 매일 보는 부인이 지은 옷보다 더 잘
맞았다. 옷이 날개라 했던가, 다른 사람처럼 준수하게 변한 김삿갓의 용모에 잠
시 추월의 시선이 흔들렸다.

  이윽고 저녁상이 들어왔다. 추월은 어느새 한복을 곱게 차려입고 있었다. 음식
솜씨는 정갈하고 담백했다. 그 중에서도 강계 지방에서만 맛볼 수 있는 싸장찌개
맛은 천하일품이었다. 강계 특산주인 인삼주는 늙은 김삿갓의 마음을 말끔히 풀
어주었다. 저녁상을 물리자 추월은 다시 조촐한 주안상을 들여왔다.
  “이보게 추월이. 평생 운수객으로  떠돌아다니다 보니 이런 대접은 처음일세.
오늘이 마침 섣달그믐이니, 자네 덕분에 오늘로써 지난 일 년 간의 시름을 모두
잊고자 하네. 진정 고맙네.”
  “고맙다는 말씀은 거두어주십시오. 부끄럽사옵니다. 섣달그믐에는 잠을 자지 않
는 법이니 오늘은 선생님과 함께 이 밤을 지새우고자 합니다.”
  말을 마친 추월은 거문고를 내려 줄을 고르더니 자작시 한 수를 병창하기 시작
했다.

  歲暮寒窓客不眠     한해가 저무는 밤 나그네 잠 못 이루고
  思兄憶弟意悽然     형님 생각 아우 생각 심사가 처연하구나.
  孤燈欲滅愁歎歇     등잔불 가물가물 시름 참기 어려워
  泣抱朱絃饌舊年     거문고 껴안고 가는 해를 보내노라.

  “어허, 천만리 강계 땅에 자네 같은 범상한 시인이 있는 줄은 몰랐네. 허난설
헌을 뛰어넘는 시재일세 그려. 그 위에 손수 거문고를 연주하고 노래까지 부르
니, 아무리 재주를 갖춘 선녀라 한들 자네를 능가하지는 못하리로세그려.”
  “그리 놀리시면 부끄럽사옵니다. 외람되오나 앞으로는 선생님을 인생의 스승으
로 모실테니 깨우침을 주실 시 한 수 부탁드리겠습니다.”
  이에 김삿갓은 눈을 감고 지나온 발자취를 회고한 뒤 붓을 들어 장시를 써내려
갔다. 초대면이기는 하지만 ‘인생의 스승’으로 모시겠다고 할 정도로 자신을 극진
히 존경하는 어여쁜 여인에게 사표가 될 훈시(訓詩)였다. 장장 여덟 연이나 되는
칠언절구 가운데 뜻이 가장 웅장한 첫 연만 소개한다.

  造化主人籧盧場     천지는 조화주가 만든 객점
  隙駒過看皆如許     말을 달리며 틈새로 엿보는 것이로다.
  兩開闢後仍朝暮     낮과 밤이 두 세계로 서로 엇갈려
  一瞬息間渾來去     눈 깜짝할 사이에 오가누나.

  추월은 숨을 죽인 채 김삿갓의 웅혼한 인생철학 속으로 빠져들어 갔다. 심원
사 범우화상으로부터 김삿갓이 천지를 돌아다니며 온갖 풍상을 겪은 얘기는 들
었지만, 그 모진 고난의 일대기가 이토록 정연한 사상으로 정리되어 펼쳐질 줄
은 몰랐던 것이다. 김삿갓이 마지막 연을 쓰고 붓을 놓자 추월은 주체할 수 없는
감동에 눈물을 왈칵 쏟으며 김삿갓의 품안으로 파고들었다. 멀리서 첫닭 우는 소
리를 들으며 추월은 비단 금침을 깔고 존경하는 스승이자 흠모하는 정인을 이불
속으로 인도했다.

  김삿갓은 말년의 호강을 만끽했다. 날이 풀리기를 기다려 추월의 안내를 받으
며 강계 일대의 명승지를 찾아다녔다. 좁은 강계 땅에 두 남녀의 로맨스는 금방
큰 화제가 되었다. 그들은 가는 곳마다 뭇 유람객들의 부러운 시선을 받으면서,
때로는 시문을 읊고 때로는 추월의 탄주를 들으며 신선 같은 하루하루를 보냈다.
그러나 추월은 늘 불안했다. 하늘같은 임이 언제 사라질지 몰라서였다. 그럴수록
추월은 온갖 정성을 다해 스승을 모셨고, 밤이면 기교를 총동원하여 임을 황홀경
으로 이끌었다.

  어느 날 밤이었다. 그날도 온갖 정성을 다해 운우지정을 나눈 뒤 추월이 간곡
한 목소리로 애원했다.
  “선생님. 제 평생에 가장 간곡한 소원이 하나 있습니다. 소녀가 선생님을 평생
모셨으면 합니다. 부디 간절한 소망을 받아주십시오.”
  김삿갓은 가슴이 찢어질 듯 아팠다. 추월은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정인이었
다. 절대로 떠나고 싶은 생각이 없었다. 그러나 언제 방랑벽이 도져 자신도 모르
게 뛰쳐나가게 될지, 그건 자제력의 영역 밖이었다.
  “그게 내 마음대로 되는 일이 아니니 나로서도 가슴이 아플 따름이구나.”
  늙어서였을까? 김삿갓은 느닷없이 눈물을 주르르 흘렸다. 정인의 눈물을 본 추
월은 흐느끼며 김삿갓의 품속으로 파고들었다. 평생 시선의 영혼을 지배해온 자
유분방한 행적이 쉬 바뀌리라는 기대는 하지 않았지만, 직접 말을 듣고 보니 인
생이 끝난 듯 막막하기만 했다. 김삿갓은 추월을 껴안고 진정을 담아 위로했다.
  “설사 이별의 날이 온다 해도 너무 슬퍼하지 말게. 학명재음(鶴鳴在陰)하면 기
자화지(其子和之)라고, 어미 학이 그늘에서 울면 멀리 떨어져 있던 새끼 학이 소
리를 듣고 달려온다는 말이 있지 않은가. 비록 몸은 떨어져 있더라도 서로를 가
슴 깊이 묻고 살면 곁에 있는 것과 무에 그리 다를 바가 있겠는가.”
  “선생님 말씀 명심하고, 그리 생각하도록 애쓰겠습니다.”
  그날 밤 추월은 어느 때보다 정성을 다해 몇 번이고 정인을 받아들였다.

  온 산천에 봄이 깊어갔다. 두 사람은 여전히 산천경개를 찾아다니며 시를 짓
고 노래를 불렀지만, 김삿갓의 붓끝에는 힘이 떨어졌고 추월의 노랫소리에는 윤
기가 가셨다.
  그러던 어느 날 새복이었다. 김삿갓이 각중에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추월
도 놀라 따라 일어났다.
  “여보게. 나 오늘 홍성엘 좀 가봐야겠네.”
  “무슨 일이옵니까?”
  “어머니가 외가에서 소복을 하고 나타나 눈물을 흘리시며 나를 부르셨네.”
  추월은 까부러지려는 의식을 억지로 가누었다. 홍성이면 강계에서 천리가 넘
는 먼 남쪽 땅, 기어이 이별의 순간이 온 것이었다. 어머니가 소복을 하고 나타
난 게 집안에 상사(喪事)가 있다는 현몽(現夢)인지 강계를 뜨고자하는 김삿갓의
잠재의식이 표출된 것인지는 알 수 없으되, 어느 경우든 만류할 수 없는 일인
것만은 분명했다. 추월은 말없이 부엌으로 나가 이른 조반을 준비했다. 눈물이
앞을 가려 몇 번이나 그릇을 떨어뜨릴 뻔했다.

  독로강 나루에 이를 때까지 두 연인은 말이 없었다. 이것이 영영 이별인 줄은
알고 있지만 말로써 그 운명을 바꿀 수도 없었다. 이윽고 나룻배가 도착했다. 김
삿갓은 이윽히 추월을 바라보다가 말없이 배에 올랐다. 추월도 터져 나오려는 오
열을 억누르며 배에 오르는 정인의 뒷모습을 바라보고 있었다. 배에 오른 김삿갓
은 몸을 돌려 일그러진 추월의 얼굴을 내려다봤다. 배가 출발했다. 추월은 허리를
깊이 숙여 정인에게 하직 인사를 올리다가, 김삿갓을 바라보며 그예 땅바닥에 주
저앉아 오열을 터뜨렸다. 배가 반대편 기슭에 닿을 때까지, 두 정인은 애절하게
서로를 마주 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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