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 삿갓

강경의 겨울나기

깊은산속 2010. 8. 10. 09:33

진주에 당도했을 때는 이미 가을이 깊어 낙엽이 거의 다 졌을 때였다. 김삿갓은
진주성으로 발길을 옮겨 촉석루에 올랐다. 임진왜란 최대 격전지 가운데 하나인
진주성에는 나무 한 그루 돌부리 하나에도 나라를 지키다 거룩하게 순국한 선조들의
넋이 깃들어 있었다. 김삿갓은 김시민 장군 김천일 장군 최경회 장군 황진 장군과
최경회 장군의 부인 논개 등을 회상하며 촉석루 난간에 앉아 유장하게 흘러가는
남강을 굽어보고 있었다. 그날의 비극을 아는지 모르는지, 남강에는 곱게 물든
단풍잎만 무수히 떠내려가고 있었다. 몸을 일으켜 촉석루를 둘러보니 충절의
유적지답게 선조의 넋을 기리는 수많은 현판시가 걸려 있었다.

  이윽고 날이 저물어 진주성을 내려와 하룻밤 신세질 집을 찾았다. 젊은 시절에는
노숙도 마다 않았으나 이제는 찬 데서는 견딜 수가 없었다. 해소병으로 기침이
심하고 온 몸이 쑤시기 때문이었다.
  “아니 이거, 삿갓선생 아니시오? 진주 땅에서 이렇게 만나다니 참으로 반갑소.”
  10여 년 전 평양 연광정에서 한번 만난 적이 있는 이북천이었다. 나라걱정
백성걱정이 심해 김삿갓이 우국지사라는 별명을 지어준 선비였다.
  “아니, 우국지사 아니시오? 여긴 어쩐 일이오?”
  “나도 삿갓선생처럼 유리걸식하는 신세 아니오. 발길 따라 가는 것이지 작정하고
왔겠소?”
 
  두 사람은 객점으로 갔다.
  “평양에서 만났을 때 노형은 파사현정(破邪顯正)하는 정치가가 되겠다고 했는데,
그렇다면 지금 암행어사로 내려온 것이오?”
  “으하하하. 삿갓선생의 농은 여전하시구려. 애를 써봤지만 시운이 따르지 않더이다.”
  우국지사는 상굿도 권력에 미련이 남아 있는 듯했다.
  “우국지사께서는 어디로 갈 작정이오?”
  “남해섬이 멀지 않으니 그리로 가볼까 하오. 삿갓선생은 어디로 가려 하오?”
  “나는 건강이 좋지 않아 따뜻한 곳에서 겨울을 났으면 하오만, 운수객의 팔자가
마음대로 되는 게 있어야 말이지요.”
  “그렇다면 강진고을로 가시지요. 안 진사라고 절친한 친구가 있는데, 내 서한을
써드릴테니 한번 가보시구려. 박대는 하지 않을 것이외다.”
  “일면식도 없는데 그리 폐를 끼쳐도 될는지…”
  “그 점은 염려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집안도 부유하지만 풍류를 아는 친구라
아마도 삿갓선생의 명성을 익히 알고 있을게요. 모르긴 해도 대접이 융숭할 것이외다.”
  “참으로 고맙소이다. 그나저나 이제 헤어지면 다시는 못 만날 것 같으니 매우
안타깝소이다.”
  김삿갓은 섭섭한 마음을 시로 읊조렸다.

  素志違其卷     우리 서로 뜻한 바는 달라도
  同心己白頭     마음은 같은데 벌써 백발이 되었구나.
  明朝南海去     그대 내일 아침 남해로 떠나가면
  江月五更秋     강산에는 어느덧 가을이 깊으리.
 
  우국지사와 이틀 낮밤을 통음한 뒤 김삿갓은 아침 일찍 강진을 향해 길을 나섰다.
그러나 병이 깊은데다 주독이 심해 걸음이 무거웠다. 절이나 서당을 만나면 며칠씩
쉬기도 했지만 병은 점점 깊어갔다. 시름시름 강진고을 안 진사 댁에 당도한 것은
섣달 그믐께였다. 안 진사는 김삿갓이 내민 우국지사의 소개장을 읽어보더니 반색을
했다.
  “어젯밤 길몽을 꾸어 무슨 좋은 일이 있을까 기대했더니 귀한 손님이 찾아주셨소이다.
어서 드시지요.”
  안 진사는 김삿갓을 정중하게 사랑방으로 맞아들였다.
  “선생의 존명은 익히 들었소이다. 북천이 소개장에서 몸이 편치 않으시다 했소만,
직접 뵈니 병색이 매우 우중한 것 같습니다. 아무 걱정 마시고 편히 쉬시면서 조리를
하시구려. 마침 강진은 겨울에도 큰 추위가 없으니 조리하기에는 그만입니다.”
  “이거 초대면에 폐가 너무 많아 몸 둘 바를 모르겠습니다.”
  “원 별말씀을 다 하십니다. 저 같은 천학(淺學)을 찾아주신 것만도 영광이지요.
그저 내 집이거니 하고 편하게 지내십시오.”
  간단하게 반주를 곁들여 저녁을 든 뒤, 안 진사는 김삿갓을 별당으로 안내했다.

  집 뒤로는 낮지만 나무가 울창한 산이요 사랑방 문을 열면 강진만이 드넓게
펼쳐져 있어 휴양하기에는 안성맞춤이었다. 김삿갓은 오랜만에 기름진 음식에
따뜻한 잠자리를 얻어 금새 몸이 가벼워지는 느낌이었다. 안 진사의 보살핌은
마치 부친을 모시듯 극진했다. 사랑방에서 노독(路毒)을 다스리며 며칠을 쉰 뒤,
김삿갓은 집 뒷산을 오르기 시작했다. 낮지만 산세가 험해 정상까지는 무리여서
중턱까지만 올랐는데, 중턱 편편한 곳에는 마침 망해루(望海樓)라는 정자가 서
있었다. 고려 때 축조된 것으로 올라서면 강진만이 끝까지 내려다보여 조망(眺望)이
시원했다. 숱한 시인묵객들이 거쳐 간 듯 누각에는 많은 현판시가 걸려 있었다.
때로는 안 진사와 함께 올라 술을 마시며 시를 짓기도 했다. 안 진사는 부를 자랑하지
않고 검소하며, 하인들에게도 인자하게 대하는 훌륭한 인품을 지니고 있었다. 동네
글방의 훈장이 사정이 있어 출타할 때는 대신 아이들을 가르치기도 했다. 농사꾼들과도
스스럼없이 어울리는 안 진사는 강진고을의 정신적 지주였다.

  김삿갓이 거처하는 별당 앞에는 자그마한 연못이 있었다. 주변에는 대나무와
소나무를 정연하게 심어놓았고, 수초가 무성한 연못 안에는 여러 종류의 물고기가
노닐고 있었다. 이윽고 겨울이 가고 봄이 되니 연못에서는 개구리들이 모여 합창을
하기 시작했다. 김삿갓은 창문을 열고 개구리의 화음을 들으며 한나절을 보내기
일쑤였다. 자연이 소생하고 있는 것이었다. 어느 날은 갑자기 소나기가 퍼부었다.
김삿갓은 붓을 들었다.

  斑苔碧草亂鳴蛙     방초 푸른 늪에 개구리소리 요란하고
  客斷門前村路斜     인적 없는 문밖에는 시골길이 한가롭네.    
  山雨驟來風動竹     소나기 오고 바람 부니 대나무가 흔들리고
  澤魚跳濺水翻荷     물고기가 뛰어오르니 연꽃이 따라 춤추네.

  “시에 힘이 넘치는 걸 보니 어지간히 쾌차하신 모양이구려.”
  시를 읽은 안 진사는 자기 일인 듯 반겼다. 아닌 게 아니라 몸이 많이 가벼워져
있었다.
  “오늘은 날씨도 따스하고 하니 금곡사엘 좀 다녀옵시다.”
  김삿갓은 안 진사를 따라 나섰다. 금곡사는 보은산에 있는 고찰이었다. 금곡사
입구에는 계곡을 사이에 두고 양편 둔덕에 집채보다 큰 바위가 마주 서 있었는데,
마치 싸움닭 두 마리가 으르릉거리며 서 있는 형상이라 예로부터 쟁계암(爭鷄岩)이라
불려오고 있었다. 
  “금곡사가 번창하지 못하는 것은 입구에서 닭 두 마리가 싸우고 있기 때문이랍니다.
삿갓선생께서 저들의 싸움을 좀 말려주시지요.”
  김삿갓은 바랑을 내려 지필묵을 꺼냈다.
 
  雙岩並起疑紛爭     두 바위가 마주 서서 싸우는 것 같으나
  一水中流解忿心     중간에 개울이 흘러 분한 마음 풀어주네.

  “역시 시선이십니다. 그리 보면 될 것을 다들 싸우고 있는 것으로만 해석했으니…”
  안 진사는 크게 깨우친 듯 오래도록 고개를 끄덕였다.
  금곡사가 자리 잡고 있는 보은산 자락은 남향이어서 어느새 진달래가 만발해
있었다. 온 산을 붉게 물들이고 있는 진달래를 보자 각중에 깊이 잠들어 있던
방랑벽이 깨어났다. 김삿갓은 말없이 시를 한 수 써서 안 진사에게 건넸다.

  遠客悠悠任病身     먼데서 온 나그네가 오래도록 병을 빙자하여
  君家蒙恩且逢春     댁에 폐를 끼치며 봄을 맞게 되었소.
  春來各自東西去     봄이 왔으니 동서로 뿔뿔이 헤어져야 하니
  此地看花是別人     이곳 꽃구경은 다른 사람과 하시오.

  “아니 이대로 떠나시려오? 아직 몸도 완쾌되지 않으셨는데…”
  “그 동안 폐가 너무 컸소이다. 이만하면 쾌차했으니 떠날 때가 되었지요.”
  “이거 섭섭해서 어찌합니까? 그래, 어디로 가시려오?”
  “워낙 정처 없는 걸객이라 발길 닿는 대로 다니지만, 화순고을 적벽강의
봄경치가 좋다 하니 우선 거기를 먼저 들릴까 합니다.”
  “그러시다면 마침 잘됐소이다. 화순군 동북면에 가시면 신석우라고, 내 막역한
동무가 있소이다. 소개장을 써드릴테니 화순에 당도하시거든 꼭 들리시오.”
  전 재산이라곤 등에 짊어진 바랑 하나, 따로 행장을 차릴 것도 없었다. 김삿갓은
안진사가 써준 소개장을 들고 휘적휘적 길을 떠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