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 삿갓

사랑의 대동강

깊은산속 2010. 8. 10. 09:49

 객점 「성인」에서 한나절 길인 평양을 김삿갓은 사흘이나 걸려서 대동강 나
루터에 당도했다. 평양 오는 길목에도 발목을 붙잡는 곳이 많아서였다. 조선 제
일의 기도(妓都) 평양, 예로부터 평양은 여염집 아낙보다 기생이 더 많다고 할
정도로 유명한 색향(色鄕)이었다. 고관대작들이 감사 자리를 서로 차지하려고
다툰 곳도 평양이요, 수많은 벼슬아치와 장사꾼들이 아리따운 기녀에게 넋을 빼
앗겨 가산을 탕진하고 패가망신한 곳도 평양이었다. 김삿갓은 유장하게 흘러가는
대동강을 바라보며 기대에 설레었다. 그에게 빼앗길 건 마음뿐이었으니, 두려울
것도 손해 볼 것도 없었다. 사랑도 많고 이별도 많은 대동강 위에는 아베크족들
을 태운 놀잇배가 수면을 그득 메우고 있었다.

  눈을 드니 평양의 진산(鎭山) 금수산이 초행의 나그네를 손짓하고 있었고, 고
개를 돌리니 수양버들이 휘늘어진 능라도가 김삿갓을 향해 윙크하고 있었다. 예
로부터 얼마나 많은 시인묵객들이 능라도에 올라 혹은 예찬도 하고 혹은 탄식도
했던가. 개천(价川)에서 흘러드는 순천강, 양덕에서 흘러드는 비류강, 성천에서
흘러드는 서진강이 어우러져 큰 강을 이루었다 하여 이름 지은 대동강은 사시
사철 풍부한 수량을 자랑하고 있었다. 강을 건너고 나서도 김삿갓은 길을 재촉
하지 않고 강둑에 앉아 저물어가는 대동강을 하염없이 내려다보고 있었다. 날이
어두워지면서 하나둘 놀잇배에 등불이 켜지는 장관이 펼쳐지고 있었다. 여기저
기서 사공들이 부르는 뱃노래가 불빛에 부서지며 더욱 구성지게 들렸다.

  성 안에는 한양에 못지않게 인파가 붐볐다. 뒷골목으로 접어드니 허름한 객
점이 눈에 띄었다. 주모는 50줄이었는데, 퇴기인지 잔주름 속에 곱상한 용모가
얼마간 남아 있었다.
  “주모. 나 술 한잔 주시오. 그리고 오늘밤에 여기서 자고 가겠소.”
  “예. 그런데 방안에 선객이 있으니 함께 주무시구려.”
  김삿갓은 방안에 있다는 선객을 불러냈다. 행색이 초라한 장년은 김삿갓보다
너덧 살 아래로 보였다. 김삿갓이 먼저 통성명하고 잔을 내밀었다.
  “나는 황해도 옹진에 사는 강 서방입니다.”
  “노형도 평양구경을 오신 모양이구려.”
  “구경을 온 게 아니라 소금을 팔러 왔다가 쫄딱 망해서 고향으로 내려가는 중
이라오.”
  “저런, 장사에서 큰 손해를 보신게로군요.”
  “장사는 썩 잘했지요. 예년에 비해 큰돈을 벌었는데, 그만 한 기생 년에게 홀
려서 탕진을 한 것이라오.”
  “그렇게 큰돈을 들였으면 정이 들어 바짓가랑이라도 붙들지 않고 어이해서 이
렇게 내쳤답니까?”
  “노형은 평양기생에게 아직 한 번도 안 당해본 모양이구려. 돈 떨어지면 언제
보았냐는 듯이 아예 문도 안 열어주는 것이 평양기방의 법도라오.”
  “저런 매정한 법이 있나! 그래서 지금 후회막심이겠구려.”
  “후회는 않는답니다. 돈은 있다가도 없어지는 법, 평양의 일류 기생과 원 없이
즐긴 기억은 평생을 가지 않겠소. 수중에 거금이 마련되면 언제든 다시 올 작정
이오.”
  참으로 욕심 없는 한량이었다. 언젠가 전라도에서 올라온 생강장수가 생강 한
배 판 돈을 몽땅 기생에게 털리고 나서 마지막으로 기생의 옥문을 그윽이 내려
다보며 지었다는 시가 떠올랐다. 

  遠看似馬目     멀리서 보니 말눈깔 같고
  近視如膿瘡     가까이서 보니 짓물러 헌데 같네.
  雨頰無一齒     두 볼에 이는 하나도 없건만
  能食一船薑     생강 한 배를 잘도 씹어 삼켰구나.

  “술값은 안 받을테니 잘 데 없으면 언제라도 들리시구려.”
  노파는 김삿갓의 풍류에 반해 아침 일찍 길을 나서는 그에게 넌지시 추파를
던졌다.

  진달래가 불같이 타오르는 모란봉은 상춘객들로 인산인해를 이루고 있었다.
대동강에는 놀잇배가 분주했고, 강 건너 능라도는 연두색 능수버들이 바람에
나부끼며 나그네를 유혹하고 있었다. 김삿갓은 금수산 정상을 향해 가파른 등
성이를 올라갔다. 정상에 올랐을 때는 이미 정오를 넘어 있었다. 금수산의 정
상인 을밀대에는 날아갈 듯한 사허정(四虛亭)이 서 있었다. 사허정은 사방이 탁
트였다 해서 붙인 이름인데, 누각 위에서는 한창 잔치가 벌어지고 있었다. 풍
악이 요란하고 기생들의 춤사위가 구경꾼들을 현혹했다. 가뜩이나 금수산 풍치
에 넋이 나간 김삿갓은 흥에 겨워 어깨춤을 덩실덩실 추며 정자로 다가갔다.
  “이게 무슨 잔치요?”
  “평양 갑부인 임 진사의 회갑잔치라 하오.”
  정자 밖에 있는 구경꾼들에게도 일일이 술과 음식을 대접하고 있었다. 그 넉
넉한 인심에 감동하여 김삿갓은 임 진사에게 다가가 축하주를 올렸다.
  “수연을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학수천세 하시옵소서.”
  임 진사는 생면부지의 하객이 고맙기 그지없었다.
  “불민한 소생을 이리 축하해주시니 참으로 감사합니다. 그런데 나이 육십에
정신이 아득하여 귀공을 기억하지 못하겠구려. 함자가 어떻게 되시는지요?”
  “대단히 송구스럽습니다. 잔치가 하도 흥겨워 초대면인데도 축하를 아니 드
릴 수가 없었습니다. 결례를 용서하소서. 소인은 조선천지를 유리걸식하는 김
삿갓이라 하옵니다.”
  임 진사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아니, 삿갓선생을 이리 만나다니요! 금강산 장안사에 불공드리러 갔다가
공허 스님으로부터 삿갓선생 이야기를 듣고 진즉부터 한번 뵈었으면 했는데,
이렇게 자진해서 찾아주시니 이런 영광이 어디 또 있겠습니까. 얘들아! 이리
와서 인사 여쭙거라. 조선 제일의 시선 김삿갓 선생이시다.”
  여덟 명의 아들딸과 배우자들, 그 아래 손주들이 차례로 큰절을 올렸다. 임
진사의 회갑연이 졸지에 김삿갓 환영연으로 바뀌었다. 구경꾼들도 돌연한 사태
에 어리둥절하며 임 진사의 깍듯한 예우를 지켜보고 있었다. 김삿갓은 주빈이
되어  진사의 청에 따라 중간 중간 적절한 시를 지어 읊어주며 양껏 술을 ?
신 뒤 잔치가 파하기를 기다려 행장을 챙겼다.
  “소생 불청객으로서 과분한 대접을 받았습니다. 이 은혜 평생 잊지 않겠나
이다.”
  “은혜라니요, 당치도 않습니다. 선생께서 읊어주신 시로 인해 잔치가 한층 빛
났습니다. 긴히 부탁드릴 일이 있으니 누추하지만 내 집으로 함께 가시지요.”
  김삿갓은 부탁할 일이 있다는 말에 거절하지 못하고 임 진사를 따라갔다.

  임진사의 집은 대궐이었다. 임 진사는 김삿갓에게 별채를 통째로 내어준 뒤
그날로 열다섯 살 먹은 기생 삼월을 전속 섹스 파트너로 들여보냈다. 평생 받
아보지 못한 호강이었다. 첫날밤, 김삿갓은 장난기가 동해 짐짓 삼월을 떠보았
다.

  “平壤妓生何所能?  평양 기생아, 너는 무슨 재주를 가졌느냐?”

  삼월은 망설이지 않고 즉각 화답했다.

  “能歌能舞又能詩.  노래도 잘하고 춤도 잘 추고, 그리고 시도 잘 짓습니다.”

  김삿갓은 삼월을 안고 있던 팔을 풀고 벌떡 일어났다. 알아듣기나 하겠나 싶
어 혼잣말로 흥얼거린 것이었으나 기대하지도 않았던 대구(對句)까지 돌아온 것
이다.
  “네가 어찌 시에 이리 능하냐?”
  김삿갓은 따라 일어나는 삼월을 덥석 안고 진하게 키스를 퍼부었다. 김삿갓은
더없이 행복한 기분으로 삼월을 안고 다시 자리에 누웠다. 옷은 이미 모두 이불
밖에 있었다.

  “能能其中別何能?  모두 잘하는 능력 가운데 가장 잘하는 것은 무엇이냐?”

  삼월은 김삿갓의 장대해진 양물을 하초로 잡아끌며 요염하게 되받았다.

  “月夜三更呼夫能.  이슥한 달밤에 남정네 꼬시는 재주랍니다.”

  유머 센스도 그만이었다. 그 교태에 음심(淫心)의 둑이 터져 김삿갓은 운우
(雲雨)의 파도에 몸을 실었다. ‘呼夫能’의 재주로 이미 남정네를 많이 끌어들였
던 듯, 삼월은 끝내주는 테크닉으로 김삿갓의 서툰 방아질을 한 단계 업그레이
드 시켜주었다.

  부탁이 있다는 말은 김삿갓이 거절하지 못하도록 하기 위한 미끼였고, 임 진
사는 매일 친구들을 초대하여 주연을 베풀어 김삿갓에게 마음껏 시를 짓고 풍
류를 즐기게 했다. 초대된 친구들도 하나같이 김삿갓의 시와 글씨에 찬탄을 금
치 못했다. 주연에는 삼월도 동참하여 노래와 춤으로 선비들의 넋을 뺐다. 주연
은 한 달간이나 지속되었다. 임진사가 평소 한 번 대접하고자 했던 평안도 일대
의 친구들을 차례로 다 불러들였던 것이다.

  주연이 끝나자 김삿갓은 연인 삼월을 데리고 평양 주변의 명승지 구경에 나섰
다. 주변이 온통 절경이다 보니 빼어난 정자도 많았다. 연광정 부벽루 대동루 읍
호루 망월루 풍월루 영귀루 함벽정 쾌재정이 하루도 빼놓지 않고 김삿갓을 불러
냈다. 어린 연인이 ‘어머, 어머’ 하고 연신 탄성을 내지르며 김삿갓의 어깨와 가
슴을 토닥토닥 두드리는 가운데, 김삿갓은 웅혼한 필치로 현판에 시를 써서 선배
시인들의 현판시 곁에 내걸었다. 하루하루가 꿈이었다. 부벽루에 올라서니 강 건
너 대동강과 능라도의 원근 포치(布置)가 한 폭의 그림이었다. 김삿갓은 붓을 들
었다.

  三水半落靑天外     산은 높아 아득히 하늘 밖에 솟아 있고
  三水中分白鷺洲     물은 세 갈래로 모래밭을 이뤘구나.
  己矣謫仙先我得     이태백이 위 두 구절을 먼저 써먹었기에
  斜陽投筆下西樓     석양에 붓 던지고 부벽루를 내려가네.

  일찍이 고려 선종 때 당대의 문호 황원현, 아니 김황원도 부벽루에 올랐다가
長城一面溶溶水 大野東頭點點山(긴 성곽 한 편에는 넘실대는 강물이요, 넓은 벌
동쪽에는 점점이 산이로세.) 하고는 시심이 막혀 나머지 두 구절을 완성하지 못
하고 통곡하며 부벽루를 내려오고 말았다고 했거니와, 조선의 시선 김삿갓도 결
국은 시로 풀어낼 수 없었을 정도로 부벽루의 절경은 인간의 표현력을 뛰어넘는
선경(仙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