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 삿갓

술은 백약지장(百藥之將)이니

깊은산속 2010. 8. 10. 09:52

평안도에 들어서자 김삿갓은 가장 먼저 중화고을 용암산 남쪽에 있는 동명
왕의 무덤을 찾아 참배했다. 전설에 의하면 동명왕은 40세에 하늘로 올라가
내려오지 않았기 때문에 왕실에서는 무덤에 동명왕이 애용하던 말채찍을 대신
묻었다고 했다. 그 말채찍에는 커다란 진주구슬이 달려 있었는데, 그 때문에
동명왕의 무덤은 ‘진주묘’라고도 불렸다. 대제국의 시조답게 동명왕은 2천년
가까이 지난 조선 말엽에도 뭇 사람들의 추앙을 받고 있었으니, 무덤에 백일
동안 참배하면 소원성취를 한다 하여 김삿갓이 찾아간 날도 한 노인이 열심히
참배를 드리고 있었다.
  “노인장께서는 무슨 소원이 있기에 그리 간절하게 기원하십니까?”
  “손자 녀석이 사랑하는 처녀가 있어 그 처녀 아니면 아무하고도 혼인을 하지
않겠다고 고집을 부리는데, 처녀 쪽 아버지가 요지부동이라 내 매일 십리씩 걸어
와 이리 빈다오. 처녀가 워낙 미인이라 손자 녀석의 애간장을 태운답니다.”
  “예. 그러시군요. 참배를 하신 지는 며칠이나 되셨습니까?”
  “오늘이 아흔 일곱 번째요. 이제 사흘만 더 참배를 하면 소원이 이뤄질 것이
오.”
  “예. 꼭 소원성취하시기 바랍니다. 그런데 이 근방에 하룻밤 묵어갈 만한 데가
어디 없을까요?”
  “우리 집이 십리밖에 안 되니 같이 가십시다. 우리 집에서는 며칠쯤 묵어가도
괜찮소.”
  김삿갓은 백배 사례하고 노인을 따라갔다.

  열다섯 살인 손자가 사랑하는 낭자는 홍문관 교리를 지낸 백상(白相)의 딸인데,
당사자끼리는 이미 몇 차례 데이트 끝에 혼인언약을 해뒀다는 것이었다. 백상은
사윗감의 지체는 따지지 않고 학문으로 시험을 보아 뽑으려 하는데, 시험문제가
워낙 까다로워 지금까지 아무도 풀지 못했다는 것이었다. 문제는 누구에게나 똑
같이 세 가지를 냈다. 첫째, 아흔아홉 살 먹은 글자가 무엇인가? 둘째, 나무 중에
사람을 알아보는 글자가 무엇인가? 셋째, 겨울이 가고 다시 삼일이 지나면, 높은
데는 풀이 나고 낮은 데는 나무가 나는 글자가 무엇인가?
  김삿갓은 이야기를 듣자마자 노인의 손자에게 두 문제는 즉각 정답을 알려주었
다.
  “첫 번째 글자는 白 자로, 百에서 위에 있는 一을 뺐으니 아흔아홉 살 먹은 글
자 아니냐. 두 번째 글자는 相 자이니, 木에 目이 달렸으니 나무 가운데 사람을
알아보는 글자 아니야.”
  “선생님, 고맙습니다. 세 번째 글자도 좀 알려주십시오.”
  “세 번째 글자는 선뜻 떠오르지 않는구나. 생각 좀 해보자.”

  그날부터 김삿갓은 그 집에서 기거했다. 대접은 융숭했다. 앞의 두 문제가 자
신의 이름을 해자(解字)한 것이니 세 번째 문제도 역시 자신의 이름과 관련이
있을 듯하여 김삿갓은 백상의 호를 알아오라 일렀다. 손자가 그의 호를 알아온
것은 사흘 후였다. 그 날은 바로 노인이 동명성왕 묘를 찾아가 백 일째 치성을
드린 날이었다. 백상의 호는 다원(茶園)이었다. 호를 종이 위에 써놓고 한동안
들여다보던 김삿갓은 무릎을 탁 쳤다.
  “세 번째 문제의 답을 찾았다. 겨울이 갔으니 봄[春]이 아니겠느냐. 春 자에서
삼일을 빼면 무슨 자가 남느냐?”
  소년은 요모조모 글자를 뜯어보더니 자신 있게 대답했다.
  “人 자만 남네요.”
  “그래, 人 자에 높은 데는 풀[艸]이 나고 낮은 데는 나무[木]가 나면 무슨
글자가 되느냐?”
  “茶 자가 되네요.”
  “그래, 세 번째 문제의 답은 바로 茶 자다. 교리어른께서는 자신의 호 다원
(茶園) 가운데 첫 글자를 세 번째 문제로 내신 것이다.”
  “아이구, 삿갓선생. 선생이 아니었으면 애꿎은 우리 손자 상사병으로 죽을 번
했소이다. 이 은혜를 무엇으로 갚는단 말입니까!”
  “은혜라니요, 당치도 않습니다. 그저 노인장의 백일기도 정성이 하늘에 닿았
나봅니다.”
  “하긴 그렇지요. 동명성왕의 묘엘 가지 않았더라면 선생을 못 만났을테니 말
입니다.”

  노인은 어디 가서 길일을 택해 왔다. 시험은 사흘 후에 보기로 했다. 그 동
안 김삿갓은 칙사 대접을 받았다. 손자가 시험을 보러 간 날, 노인은 주안상을
사이에 두고 김삿갓과 마주 앉아 초조하게 손자를 기다리고 있었다. 날이 저물
어 밤이 되어도 손자는 돌아오지 않았다.
  “선생, 뭐가 잘못된 거 아닐까요?”
  “걱정 마십시오. 틀림없이 합격했을겁니다.”
  “그런데 왜 여태 돌아오지 않는단 말입니까?”
  “교리어른의 성격이 워낙 꼬장꼬장하시다니 딸에게는 아직 알리지 않았을 것
입니다. 며칠 빌미를 뒀다가 적당할 때 자연스럽게 알리려 할테니까요. 그런데
그 집 딸은 손자가 시험 보러 온 걸 알고 초조하게 결과를 기다릴 것 아닙니까?
손자는 처녀를 너무 사랑하는 나머지 밤이 되어 남의 눈에 띄지 않을 때 만나
반가운 소식을 전해주고 오느라 늦을 것이니 과히 걱정하지 마시고 술이나 드십
시다.”
  김삿갓의 얘기가 끝나고 조금 있다가 손자가 들어섰다. 지체한 사유는 김삿갓
이 예측한 대로였다.
  “선생. 곧 택일도 하고 혼례도 치러야 하는데 저로서는 도저히 감당할 수 없
습니다. 더욱이 사돈댁이 학문이 높은 집안이라 격을 맞추려면 선생의 도움이
꼭 필요합니다. 그러니 혼례를 치를 때까지만 부디 좀 머물러서 여러 가지로 보
살펴주십시오. 내 반드시 후사하리다.”
  “예, 말씀 잘 알아들었습니다.”
  혼례란 양반 집안이나 평민 집안이나 거기서 거기, 굳이 혼례까지 관여하지는
않아도 될 터였다. 무엇보다 사례를 하겠다는 언질이 부담스러웠다. 다음날 새벽,
김삿갓은 노인이 깨기 전에 행장을 챙겨 길을 나섰다.

  매일 보는 녹수(綠水)요 매일 오르는 청산이건만, 김삿갓의 눈에는 날마다 새로
운 녹수요 새로운 청산이었다. 그래서 언제나 목적지는 정하되 일정은 멋대로였
다. 평양을 향해 느릿느릿 북쪽으로 발길을 옮기던 중 날이 저물었는데, 마침 길
가에 객점이 하나 있었다. 객점의 이름은 놀랍게도 「성인(聖人)」이었다. 필시
고사(故事)에 밝은 어느 애주가가 지어준 듯했다. 중국의 고서 「위략(魏略)」에
따르면 위나라 왕이 금주령을 내렸는데, 백성들이 밀주를 담아서는 관리들이 알아
듣지 못하도록 좋은 술은 성인, 맛이 떨어지는 술은 현인(賢人)이라는 은어로 은밀
하게 거래한 데서 나온 말이다. 조선에서도 영조 때 금주령을 내려 어기는 양반은
첩지를 거두고 평민으로 강등시키다가, 그래도 영이 안 서자 적발된 자들을 참수하
는 초강경책을 쓰기도 했었다. 술은 사람의 힘으로 막을 수 없는 영물(靈物)인즉, 결
국 영조의 금주령은 백성들은 물론 사대부들로부터도 동의를 받지 못해 흐지부지되
고 말았다. 「식화지(食貨志)」라는 책에도 ‘酒百藥之長’, 즉 술은 모든 약 가운데서
으뜸이라 하지 않았던가. 그 효능은 내가 보증한다.

  “주인장, 객점이름을 「성인」이라 했는데, 누가 써준거요?”
  객점의 주인은 주모가 아니라 풍채가 우람한 70대 영감이었다.
  “누가 써주기는, 내가 직접 썼지요. 촌구석에서 술장사나 한다고 사람 우습게
보우?”
  “천만의 말씀입니다. 이름이 하도 이채로워서 물어본 것뿐이오.”
  “내력이 있지요.”
  노인은 길게 한숨을 내쉬며 술상 맞은편에 와 앉았다. 김삿갓은 무안하기도
하고 미안하기도 하여 얼른 잔을 건넸다.
  “오늘은 여기서 묵어갈까 하니 한잔 죽 들이켜고 천천히 얘기해보시오.”
  노인은 단숨에 대접을 비우더니 이야기를 꺼냈다.
  “노형도 영조 때 금주령을 내린 적이 있다는 사실을 아시는지요?”
  “예, 알고 있습니다.”
  “그때 내 조부께서는 조정의 하급관리로 계셨는데, 워낙에 술을 좋아하셔서
한마을 동무들과 어울려 몰래 술을 마시다가 기찰하는 순검에게 적발되어 참수
를 당하셨다오.”
  “저런! 금주령을 어긴 자들을 참수했다는 얘기를 듣기는 했지만 실제 변을
당한 가족을 만나기는 처음이오.”
  김삿갓은 얼른 술을 한 잔 더 권했다.
  “조부가 참수된 뒤 우리 가문은 노비로 폐출되어 이 산골로 숨어들었지요. 나
는 조부께서 참수당한 것이 억울해서 나이가 들자 직접 술을 빚어 장사를 하게
됐다오. 솜씨에 어느 정도 자신이 붙은 다음에는 옥호도 「성인」으로 바꾸고
술값도 다른 데보다 얼마간 비싸게 받기 시작했다오.”
  “예, 그리 하셔도 되겠소. 술맛이 아주 그만이구려.”
  “오늘은 오랜만에 솜씨를 알아주는 손님을 만났으니 장사고 뭐고 같이 술이나
마십시다. 오늘 술을 공짜요.”
  “아니, 그런 법은 없소. 술값은 내가 낼테니 마음 놓고 드시기나 하시오.”
  실랑이 끝에 술값은 반만 내기로 절충이 되었다.

  “손님은 어디로 가시는 길이오?”
  “평양을 가는 길인데 딱히 볼일이 있어서는 아니고, 여기저기 방랑하는 처지
요.”
  “평양은 여기서 오십 리밖에 안되니 한나절 길이지요. 평양에 가시거든 혹 내
딸아이에게 안부를 좀 전해줄 수 없겠소?”
  “그러지요. 그래 연락할 곳은 알고 계시오?”
  “내가 처복이 없어서 위로 아내 둘을 잃고 세 번째 얻은 마누라한테서 겨우 그
거 하날 얻었다오. 그런데 그 마누라마저 아이가 세 살 때 불귀의 객이 되고 말았
지요. 그 아이가 일곱 살 때 이 주막과 맞바꾸어 평양의 한 기방 주인에게 양녀로
보냈는데, 어느 객점에서 무슨 기명을 쓰는지는 모르겠소. 어릴 때 이름은 곤옥이었
다오. 내 성이 예 가니까 예곤옥이지요.”
  말이 양녀지 형편이 어려워 딸을 기녀로 팔아먹었다는 뜻이었다. 기방 주인은 그
렇게 사온 여자애들을 4~5년 키운 뒤 열 살이 넘으면 동기로 손님방에 들여보내
거금을 받고 돈 많은 한량으로 하여금 소위 ‘머리를 얹어준다’는 의식으로 숫처녀를
바치게 했으니, 요즘 같으면 주인이나 손님이나 마캉 다 미성년자 성매매로 잡혀 들
어갈 일이었다. 그러나 양반이로되 천민으로 전락하여 술장사를 하는 노인의 처지가
천하걸객인 자신의 처지와 비슷하여 야멸치게 여겨지지는 않았다. 노인의 주량도 어
지간하여 두 사람은 밤이 이슥하도록 술을 마시며 세상 얘기를 나누었다.

'김 삿갓' 카테고리의 다른 글

꿈에도 그리든 고향,천둥마을  (0) 2010.08.10
추색(秋색)에 잠긴 황해도  (0) 2010.08.10
사랑의 대동강  (0) 2010.08.10
이별의 대동강   (0) 2010.08.10
눈 마저 침침하니 발길 더욱 스산하고  (0) 2010.08.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