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 삿갓

주모의 굳은 절개

깊은산속 2010. 8. 10. 10:06

김삿갓은 제천→원주→한양을 거쳐 서도로 2차 방랑의 행보를 잡았다. 기온
이 더 없이 적당하여 발걸음은 가벼웠으나 온 산천이 붉게 타오르며 눈길을 붙
잡는 바람에 행보는 한여름 엿가락처럼 축축 늘어졌다. 해거름에 원주로 넘어
가는 고개 아래 당도하니 마침 객점이 하나 나타났다.
  “주모. 지나가는 과객인데 수중 무일푼이니 잠이나 좀 재워주게.”
  “돈이 없다고 찾아든 손님을 굶겨 재울 수는 없지요. 건넌방으로 드시우.”
  주모가 들고 온 저녁상에는 술까지 한 병 올라 있었다.
  “이 세상 주모들이 모두 자네 같으면 살맛이 나겠네그려.”
  김삿갓은 기대하지도 않았던 막걸리가 목을 타고 넘어가자 각중에 시흥(詩興)
이 도도하여 율곡의 「추사(秋思)」라는 시를 읊었다. 너무 길어 시는 생략한다.
  “참 계절에 잘 어울리는 시로군요.”
  “자네가 시를 어떻게 아시는가?”
  “원래는 우리 집도 양반가문이었는데, 윗대에서 뭐가 잘못되어 신세가 이리
고단하게 되었답니다. 다행히 어릴 때 동네 훈장님의 배려로 사서삼경까지 공
부를 하고 시도 좀 배웠지요.”
  “어허, 사서삼경까지 공부를 했다니 대단하시네그려.”
  자세히 보니 자신과 동년배쯤 되는 듯한데, 고운 자태가 함흥에서 반년 간
동거했던 소연과 흡사하여 가슴이 저릿해졌다.
  식사를 마친 뒤 자리에 누웠으나 휘영청 밝은 달이 가슴을 뒤흔들어 도저히
잠이 오지 않았다. 주모는 남편과 사별한 지 5년으로, 하나뿐인 아들은 읍내에
있는 외가에서 서당에 다닌다 했다. 5년이나 굶었으면 넌지시 추파라도 던질
법하련만, 여인의 몸가짐은 추호의 빈틈도 보이질 않았다. 김삿갓은 등잔을 밝
혀 시를 써내려갔다.

  (앞 4연 생략)
  昭君玉骨胡地土     왕소군의 고운 뼈는 호지의 흙이 되고
  貴姬花容馬嵬塵     양귀비의 고운 자태도 말발굽 아래 먼지였잖은가.
  世間物理皆如此     세상 이치가 모두 이러하거늘
  莫惜今宵解汝身     오늘 밤 옷 벗기를 아까워하지 마시게.

  ‘한번 줘~잉’ 하는 노골적인 유혹이었다. 마침 안방에도 불이 켜져 있었다.
김삿갓은 헛기침을 한 뒤 문을 열고 시를 툭 던져 넣고 마당을 서성이다가, 다
읽기를 기다려 다시 헛기침을 한 뒤 문을 열고 들어갔다.
  “객점에 들었으면 곱게 주무시고 떠날 일이지, 어찌 이리 홀로 사는 아녀자
의 마음을 흔들어놓으십니까?”
  “마음이 흔들리면 그대로 하면 돼지 홀로 사는 처지에 무에 걱정인가?”
  “이 몸 아직 상중이라 몸을 열 수가 없거든요.”
  “남편 죽은 지 5년이나 지났다면서 아직 상중이라니, 그게 무슨 소린가?”

  주모는 사연을 털어놨다. 남편이 죽자 주모는 풍수쟁이에게 큰돈을 주고 명
당을 잡아 장례를 치렀다. 외아들이 잘되게 해달라는 기원(祈願)이었다. 그런
데 이웃마을 황 진사가 명당이라는 소문을 듣고 남편의 묘 바로 앞에 덜컥 지
애비 묘를 써버렸다. 명당을 차지하고 있는 묘 앞에 다른 묘를 쓰면 명당의 정
기가 그 묘로 옮겨가는 것이다. 주모는 여러 차례 관가에 고발하여 이장명령을
받아냈으나 황 진사는 차일피일 미루기만 했다. 더욱이 신임 군수는 황 진사와
죽마고우라 아예 송사 자체를 미적거리고 있었다.
  “그러니 선비님께서 소장(訴狀)을 잘 좀 써주셔요. 수절과부 후리는 솜씨를
보니 군수의 마음도 능히 움직이겠소이다.”
  “그 일만 해결되면 한 번 주겠는가?”
  “여부가 있겠습니까.”
  김삿갓은 간단명료하게 다음과 같이 고소장을 써주었다.

  掘去堀去 彼隻之恒言      파간다 파간다 하는 것은 저쪽이 늘 하는 말이오,
  捉來捉來 本守之例題      잡아온다 잡아온다 하는 것은 군수가 늘 하는 말일세.
  今日明日 乾坤不老月長在  오늘내일 하는 동안 천지는 안 늙어도 세월은 자꾸 가고
  此頉彼頉 寂莫江山今百年  이 핑계 저 핑계 대는 동안 적막강산은 백년은 가리로다.

  “실례지만 혹시 김삿갓 선생님이 아니신지요?”
  여인은 몸을 고쳐 앉으며 정색을 하고 물었다.
  “아니 그걸 어떻게 알았는가?”
  “조금 전에 주신 유혹의 시를 보고 어렴풋이 짐작했지만, 제 부탁을 받자마
자 바로 이렇게 사리를 반듯하게 짚어내실 분은 조선에 삿갓선생님밖에 더 있
습니까?”
  “미안허이 주모. 내 미리 신분을 밝히지 않은 것은 습관이 돼서 그런 것이
지 속일 뜻은 없었네. 그나저나 남편에 대한 추모가 애틋하니 일이 잘 해결되
기를 바라네.”

  주모는 새벽같이 일어나 동헌으로 달려갔다. 왕복 백리 길이었다. 주모는 초
저녁이 돼서야 돌아왔다.
  “일은 잘 처결되었는가?”
  “예. 5일 안으로 이장을 시키겠다고 약조를 했습니다. 모두가 삿갓선생님
덕분입니다.”
  “자네 추모가 애틋하여 산소의 음덕이 나타난 것이지 내 덕분이랄 게 뭐 있
겠나.”
  주모는 오는 길에 미국산 쇠고기까지 사다가 거하게 술상을 내왔다. 하필 미
국산 쇠고기를 사온 것은 없는 광우병을 핑계로 재협상을 요구하며 거리로 뛰
쳐나온 소위 ‘정의구현사제단’이라는 빨갱이들에 맞서는 국민적 의지를 보여
주기 위해서였다. 나오려면 일찍이나 나오든지, 하필 촛불폭도들이 본격적으로
광란을 부리기 시작하자 이를 부추겨 국가를 혼란에 빠뜨리려는 불순한 의도를
가지고 참여한 것이니 이들이 말하는 ‘정의’는 바로 대한민국의 전복 아니겠
는가.
  “군수가 소장(訴狀)을 다 읽고 나더니 깜짝 놀라 누가 쓴 것이냐고 묻습디
다. 삿갓선생님이 먼 친척 되시는데, 제 딱한 처지를 듣더니 노발대발하시며
소장을 써주시더라고 했더니 그 자리에서 바로 황 진사에게 형리를 보내더이다.”
  “예끼 이 사람아! 먼 친척이 된다면 한번 주겠다던 약조를 이행할 수 없지
아니한가?”
  “삿갓선생님. 그 약조는 이부자리를 펴는 것으로 대신하면 아니 되겠습니까?”
  지조 높은 선비들이 간혹 연인인 기녀와 이부자리만 펴놓고 살은 섞지 않는
고결한 사랑방정식이 있었다. 김삿갓은 자신을 흠모하되 정절을 지키려는 주모
의 절개가 참으로 어여뻤다. 굳이 우기면 속곳을 열기는 하겠으나 구차했다.
  “그리 하세나. 자네의 귀한 뜻이 참으로 가상하이.”
  “선생님의 크신 도량에 감사드립니다.”
  주모는 장롱에서 원앙금침을 꺼내 주안상 옆에 조심조심 펼쳐놓았다. 이어
벽장에서 촛대와 황초 두 쌍을 꺼내더니 술상 양 옆에 켜 놨다. 살꽂이만 못했
지 영락없는 신방이었다. 술맛은 지금까지 마신 술맛을 다 합친 것보다 좋았고,
밤을 새워 술을 따라주는 주모의 자태는 함흥 명기 소연보다 고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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