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 삿갓

아버지의 자리

깊은산속 2010. 8. 10. 10:08

 조선의 최북단인 함경도 종성에서 영월까지는 천리가 훨씬 넘는 길이었다.
행여 어머니에게 변고라도 생겼을까 싶어 옆도 돌아보지 않고 길을 재촉한 김
삿갓은 불과 열이틀 만에 영월에 당도했다. 집에는 아무도 없고 낯선 강아지
한 마리가 김삿갓을 보고 사납게 짖어댔다. 이윽고 8, 9세쯤 되어 보이는 소년
이 나타났다. 집을 잘못 찾아들었을 턱은 없을 터, 그렇다면 그새 주인이 바뀐
게 아닌가 싶었다.
  “누구를 찾으시는지요?”
  소년은 나이에 어울리지 않게 의젓하게 물었다.
  “너는 이 집에 사느냐?”
  “예, 그런데요?”
  “너희는 언제부터 여기 살았느냐?”
  “오래 되었다고 들었습니다만.”
  소년은 본능적으로 핏줄을 인지한 때문인지 호의적인 표정으로 김삿갓을 유
심히 훑어보았다. 마침 점심나절이라 들에 나갔던 아낙이 손에 호미를 든 채
들어섰다. 한눈에 봐도 부인 권 씨였다.
  “여보 부인. 내가 돌아왔소.”
  영문을 몰라 한동안 멀거니 서 있던 권 씨는 비명을 질렀다.
  “아이구 여보! 이제야 돌아왔구려! 죽었는지 살았는지를 몰라 얼마나 애를
태웠다구요.”
  권 씨는 울먹였다. 김삿갓도 눈시울을 적시며 다가가 부인의 손을 움켜잡았
다. 부인은 생각난 듯 소년을 돌아다보며 울먹이는 목소리로 일렀다.
  “둘째야. 이 분이 바로 한양으로 과거공부 하러 가셨던 네 아버지시다. 인
사 여쭙거라.”
  둘째는 활짝 밝아진 표정으로 깊게 허리를 숙여 인사를 올렸다. 그러나 김삿
갓은 의아했다. 집을 나간 지 10년, 이만한 둘째가 있다니 뭔가 아귀가 맞지
않았다. 김삿갓의 뜨아한 표정을 보고 권 씨가 해명에 나섰다.
  “저도 임신한 사실을 모르고 있었는데, 서방님이 집을 떠나자마자 입덧이
계속되어 이듬해 5월에 둘째를 낳았답니다. 올해로 만 아홉 살이 되었지요.”
  김삿갓은 그제야 의혹을 털고 호탕하게 웃음을 터뜨렸다.
  “어허허허. 듣고 보니 아들 하나를 공으로 얻은 셈이구려.”
  자세히 보니 자신을 닮아 제법 명석해 보였다.

  김삿갓은 안방으로 들어가 부인이 내준 새 옷으로 갈아입고 둘째의 큰절을
받았다.
  “어머니와 학균은 어딜 갔소?”
  “어머니는 외삼촌이 돌아가셔서 며칠 전에 홍성에 가셨고요, 학균이 얘기는
나중에 해드릴테니 우선 둘째와 말씀을 좀 나누세요.”
  “외삼촌이 돌아가셨다니 어머니가 상심이 크시겠구려.”
  어머니가 상복을 입고 꿈에 나타난 건 바로 외삼촌이 돌아가셨기 때문이리라.
김삿갓은 큰절을 올리고 앉아 있는 둘째에게 시선을 돌렸다.
  “너를 이제야 만나게 되어 미안하구나. 당신도 혼자 손에 아이 키우느라고
고생이 많았소. 그래 둘째야. 글공부는 하고 있느냐?”
  “예. 아랫마을 서당에 다니고 있습니다.”
  “다행이로구나. 어디까지 공부를 했더냐?”
  “얼마 전에 「중용」을 마치고 지금은 「맹자」를 공부하는 중입니다.”
  “아니, 그렇게 진척이 빨랐더냐? 장하구나.”
  “둘째는 당신을 닮아 서당에서도 가장 공부를 잘한답니다.”
  “그런데 다 큰 애를 둘째야, 둘째야 하고 부르니 어떻게 된 일이오?”
  “이름을 지어줄 아버지가 집에 없는데 누가 이름을 지어줘요?”
  권 씨의 목소리는 10년 전 한창 잔소리를 해댈 때처럼 갑자기 옥타브가 올라
갔다.
  “내가 없더라도 큰집에 형님이 계시지 않소.”
  김삿갓은 3형제가 있었는데, 동생은 황해도에 살 때 일찍 죽었고 위로 병하
라는 형이 10리쯤 떨어진 동네에 살고 있었다.(갑으네. 참고하시게.)
  “모르시는 말씀 마세요. 당신이 떠난 뒤로 아주버님은 발길을 딱 끊으시더
니 한 달 만에 한양으로 이사를 가셨어요. 그때 학균이도 데리고 가셨어요.”
  “아니, 학균이는 왜?”
  “큰댁에 아들이 없잖아요. 그래서 학균이를 양자로 데리고 가신거예요.”
  맞는 풍습이기는 하지만 동생이 떠난 집안을 돌봐줄 생각은 않고 자신의 잇
속만 차린 형이 야속했다. 김삿갓은 눈을 감은 채 한동안 생각에 잠겨 있더니
둘째를 향해 입을 열었다.
  “지금부터 네 이름은 날개 익(翼) 자를 써서 익균이라고 하겠다. 익 자는
남을 공경하고 도와준다는 뜻도 포함하고 있으니 앞으로 세상을 살아가면서 이
름자에 부끄럽지 않도록 처신하거라.”
  균 자는 돌림자였다.
  “아버지 말씀 명심하겠습니다. 좋은 이름 내려주셔서 감사합니다.”
  익균은 눈물을 글썽이며 존경심이 가득 담긴 얼굴로 김삿갓을 쳐다봤다. 이
름 없이 보낸 지난 9년간의 설움이 한꺼번에 보상된 듯한 표정이었다. 아내 권
씨도 눈물을 글썽이며 몇 번이고 익균을 불러 큰 소리로 대답하도록 하고서는,
모자가 함께 깔깔거리며 웃곤 했다. 김삿갓은 가슴이 먹먹해왔다.

  이튿날 김삿갓은 천천히 동네를 한 바퀴 둘러보았다. 양 팔로 동네를 껴안듯
둘러서 있는 산천은 옛 모양 그대로인데, 동구 앞 정자나무는 몰라보게 커 있
었다. 여러 어르신들이 세상을 뜬 가운데서도 김삿갓에게 처음으로 글을 가르
쳐주었던 황 초시어른의 타계소식에 가장 마음이 아팠다. 오늘의 문재(文才)는
모두가 황 초시어른의 가르침 덕분이었던 것이다. 저녁이 되자 김삿갓은 공부
를 마친 익균과 겸상을 하고 마주 앉았다.
  “아버지. 청이 하나 있습니다.”
  “그래, 무슨 청인지 말해보거라.”
  “앞으로 아무 데도 가지 마시고 저희랑 함께 사시면 안 되겠습니까?”
  영민한 익균은 집에 돌아온 날부터 이미 몸이 근질거리는 아버지의 속내를
느끼고 있는지도 모를 일이었다.
  “10년 만에 집에 돌아왔는데 벌써 그런 걱정을 하느냐?”
  “저는 어쩐지 불안합니다. 어머니께서는 늘 아버지께서 한양으로 과거공부
하러 가셨다고 말씀하셨지만, 저는 그 말씀이 사실이 아닌 줄 알고 있었습니다.
서당에서 아버지께서 왜 집을 떠나셨는지 그 내막을 어렴풋이 들었거든요. 그
래서 언젠가는 아버지께서 또 집을 떠나실 것만 같아 불안합니다.”
  “그래, 알았다. 이제부터는 너와 함께 집에서 살테니 불안한 생각일랑 거두
거라.”
  “약조하시는겁니다. 만약 다시 집을 떠나시면 그날로 공부를 걷어치우고 아
버지를 찾아 나서겠어요.”
  김삿갓은 밥상을 물리고도 한참을 그 자리에 앉아 깊은 생각에 잠겼다.

  김삿갓은 다음날부터 몇 번씩이나 읽었던 서책을 펼쳐들고 다시 학문에 정진
하는 한편, 익균에게 자신의 지적(知的) 체계를 전수하기 시작했다. 서당에서
나 책에서는 배울 수 없는 시작법(詩作法)부터 삼강오륜과 오덕(五德)에 이르
기까지 하나씩 전수해나갔다. 매일 몇 차례씩 눈에 띄는 사물을 대상으로 시를
지어 원리와 기법을 일깨워나갔다. 가르치는 자나 배우는 자나 의욕이 충만하
여 집안은 열기로 가득했다. 진도는 빨랐다. 익균은 하나를 가르치면 셋을 유
추해냈다. 김삿갓은 처음으로 자식사랑의 뿌듯함을 만끽했다.
  그러나 지난 10년 동안 몸에 밴 방랑벽은 자식사랑보다 강력하게 그의 의식
세계를 지배하고 있었다. 집에 돌아온 지 6개월이 지나 소슬바람이 불어오기
시작하자 김삿갓은 더 이상 참을 수가 없었다.
  “여보. 집에 돌아온 지 반년이 넘도록 어머님을 뵙지 못했으니, 내 홍성에
내려가 어머님을 모시고 오리다.”
  권 씨는 가슴이 철렁했다. 기어이 올 것이 오고 만 것이다. 간곡하게 말린다
고 들어줄 사람도 아니다. 그게 저 사람의 운명인 것을…
  “그럼 익균이를 데리고 가면 안 될까요?”
  겨우 생각난 최후의 카드였다. 설마 도중에 아이를 떼놓고 달아나지는 못하
겠지 해서였다.
  “그 무슨 소리요? 장차 대과를 바라보고 한창 공부에 열중하고 있는 아이를,
그까짓 아버지 외가 가는 데 동행하자고 서당을 쉬란 말이오?”
  권 씨도 더는 만류할 방법이 없었다.
  이튿날 오후, 익균이 서당에 가고 권 씨가 밭에 나간 사이에 김삿갓은 삿갓
에 바랑 차림으로 훌훌 골 밖으로 날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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