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 삿갓

함흥 제일의 기녀 소원

깊은산속 2010. 8. 10. 10:20

해금강을 향하는 김삿갓은 가슴 한구석이 텅 빈 느낌이었다. 가족을 뒤로 하
고 집을 나선 지 어언 5년, 그 동안 세상과 인연을 끊기 위해 무던히도 애를
썼건만 호연지기를 만나니 자신도 모르게 정이 되살아났던 것이다. 삭막한 심
경으로 해금강에 이르니 아득한 겨울바다가 더없이 쓸쓸해 보였다. 삼면이 바
다로 둘러싸인 금강산 절경 가운데 유일하게 바다로 틔어 있어 가장 아기자기
한 정취를 자아내는 해금강의 절경도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한동안 망망한 바
다와 황량한 백사장을 지켜보고 서 있던 김삿갓은 북쪽으로 발길을 돌렸다. 관
북천리, 함경도를 돌아볼 작정이었다. 길을 가는 동안 솔잎도 따 먹고 칡뿌리
도 캐 먹으며, 낮에는 걷고 밤에는 토굴이나 바위틈에서 잠을 잤다. 춥고 배고
픈 가운데도 산과 바다가 숨바꼭질하듯 펼쳐내는 경치는 일품이었다.

  이윽고 안변에 이른 김삿갓은 석왕사를 찾아 경내는 물론 석왕사를 둘러싸고
있는 설봉산을 속속들이 구경했다. 석왕사는 이성계가 무학대사에게 빚을 갚으
러 지어준 절이다.
  “어젯밤 꿈을 꾸었는데, 온 동네의 닭들이 일제히 울고 집이 무너져 서까래
세 개를 지고 겨우 폐가를 벗어났습니다. 무슨 꿈인지 궁금하여 찾아뵈었습니
다.”
  “모든 닭들이 일제히 울었다는 것은 아침이 밝아 새 시대가 온다는 징조이
며, 서까래 세 개를 지고 나왔다는 것은 임금 왕 자를 뜻하니 귀공께서 장차
새 나라를 세워 임금이 된다는 뜻입니다. 이 얘기는 천기에 해당하는 내용이니
깊이 간직하시어 대업을 이루소서.”
  수많은 건국설화 가운데 하나이니 사실 여부를 따지는 건 부질없다. 이후 무
학대사는 이성계가 조선을 건국하고 한양으로 천도하는 데도 깊이 관여했으며,
이성계는 그 보답으로 석왕사를 지어주었던 것이다.

  김삿갓은 석왕사 후원에 있는 명부전(冥府殿) 앞에서 걸음을 멈추었다. 수장
인 염라대왕을 비롯하여 지옥을 다스리는 십대왕을 모신 곳이다. 예수교와 함
께 불교도 지옥과 천당을 구분해놓았다. 부처님이나 하느님이 완전한 존재라면
모든 중생을 선하게 교화하여 극락이나 천당으로만 가도록 하면 되련만, 양대
종교가 다 불완전한 신통력을 스스로 인정하고 있는 셈이다. 당대에 경전을 쓴
작가들의 창의력이 거기까지가 한계였던 것이다. 후원에는 불교가 들어오기 훨
씬 이전부터 민속신앙으로 모셔오던 산신각과 칠성당도 공존하고 있었다.

  김삿갓은 석왕사를 나선 지 한 달여 만에 함흥에 닿았다. 철령에서 함흥에
이르는 천여 리는 한 쪽은 바다를, 한 쪽은 고산준령을 끼고 있어 예로부터 조
선에서 가장 볼거리가 많은 절경으로 알려져 있었다. 관북에서 가장 큰 도시인
함흥은 이성계의 도시다. 이성계는 고려조에서 함흥 만호 벼슬을 지낼 때 북쪽
오랑캐와 왜구를 물리친 혁혁한 전공(戰功)으로 승진을 거듭하여 창왕 원년(1388)
에는 수문하시중에 이르렀다. 이후 명나라 정벌전쟁 때 우군도통사를 맡아 요
동으로 진군하던 중, 압록강 위화도에서 회군하여 국권을 찬탈한 뒤 새 왕조를
일으킨 이야기는 널리 알려진 사실(史實)이다. 이성계는 파워 게임에서 아들
방원에게 밀려 함흥으로 낙향한 뒤, 귀경을 종용하러 온 방원의 차사(差使. 임
금이 중요한 임무를 부여하여 지방에 파견한 관리)들을 모조리 죽여 ‘함흥차
사’라는 신조어를 만들어내기도 했다.

  함흥은 태조 이성계의 잠저(潛邸)와 능침을 비롯하여 역사유적도 많고 누각
과 정자도 즐비했다. 함흥 제일의 절경은 구천각이었다. 누각이 구천(九天)에
닿을 듯하다는 뜻으로 지은 이름이니 지을 당시부터 위용을 인정받은 셈이었다.
멀리 성천강을 굽어보며 서 있는 구천각은 아닌 게 아니라 조선 제일의 풍광을
한눈에 조망할 수 있는 명소였다. 때마침 성천강에 무지개처럼 걸려 있는 만세
교 위로 풍류객인 듯한 한 사내가 말을 타고 천천히 건너오고 있었고, 다리 아
래로는 놀잇배 두 척이 한가로이 떠 있었다. 김삿갓은 시흥(詩興)이 도도하여
붓을 들었다.

  人登樓閣臨九天     누각에 올라보니 구천각이 여기인데
  馬渡長橋踏萬歲     나그네 말을 타고 만세교를 건너오네.
  山疑野狹遠遠立     산은 들이 좁을까 멀리 물러나 있고
  水畏舟行淺淺流     물은 배가 지나갈까 두려워 얕게 흐르네.

  저 멀리 강가 풀밭에 노인 네 명이 둘러앉아 술판을 벌이고 있었다. 곁에서
는 한 기생이 나붓이 술심부름을 하고 있었다. 김삿갓은 각중에 술이 땡겨 술
판으로 다가갔다. 며칠 동안 목을 축이지 못했던 것이다.
  “어르신들, 송구하오나 목이 컬컬해서 그러니 술 한 잔만 얻어마실 수 없겠
습니까?”
  기생이 막 술잔을 건네주려는데 한 노인이 제동을 걸었다.
  “우리는 지금 시회를 즐기고 있는데 거지가 감히 끼어들어 파흥(破興)하려
느냐? 썩 물러가지 못할까!”
  김삿갓은 문전박대와 거지취급에 이골이 난 지 오래였다.
  “시회를 파흥할 생각은 없습니다. 술 몇 잔만 주시면 저도 시를 지어 어르
신들의 흥을 돋우겠습니다.”
  “예끼 고얀 놈 같으니라고. 아무리 술에 환장을 했기로서니 시를 짓겠다니,
시가 뉘 집 강아지 이름인 줄 아는가!”
  합석한 기생이 끼어들었다.
  “원 생원어른, 세상에서 술 인심만큼 좋은 게 없다는데 너무하십니다. 네
어르신께서 다 드시고도 남을 만큼 술이 넉넉한데 그리 야박할 건 없질 않습니
까.”
  기생의 애교 어린 항변에 혼자 나서서 김삿갓을 윽박지르던 원 생원이라는
노인도 더는 군말이 없었다. 기생은 살포시 미소를 띠며 김삿갓에게 가득 찬
술잔을 내밀었다.
  “고맙네. 자네 덕분에 며칠 만에 목을 축이네그려.”
  김삿갓은 거푸 석 잔을 들이켰다.
  “커~ 이제야 살 것 같네. 자네 이름이 뭔가?”
  “명월이라 합니다.”
  “명월이라, 공산명월 같은 시원한 미모에 썩 잘 어울리는 이름이로세. 자네
혹 소연이라는 기생을 아는가?”
  “어머나, 손님께서 소연언니를 어떻게 아세요? 저에게는 친언니나 다름없는
분이세요.”
  김삿갓은 언젠가 강원도 산중에서 하룻밤 신세를 진 적이 있었다. 홀로 사는
칠순 노파는 딸이 함흥에서 소연이라는 이름으로 기생질을 하고 있다며, 혹 만
나거든 안부나 전해달라고 부탁했던 일이 떠올라 물어봤던 것이다.

  명월이 행색도 남루한 거지와 길게 수작하는 모습에 눈꼴이 사나워진 서 진
사가 노기를 띠고 호통을 쳤다.
  “명월아! 너는 출신도 모르는 거지와 웬 수작이 그리 기냐!”
  명월이 노인들 쪽으로 몸을 돌리자 김삿갓이 한 발짝 다가서며 공손하게 말
했다.
  “술을 몇 잔 얻어마셨으니 어르신들께 약속드린 대로 시를 한 수 올리겠습
니다.”
  문 첨지라는 노인이 경멸에 가득 찬 눈초리로 빈정거렸다.
  “행색을 보아하니 도대체 글을 배우긴 배웠는가?”
  조 석사라는 노인도 한마디 거들었다.
  “글은커녕 언문도 못 배웠을걸세.”
  제나라 글인 언문을 천대하는 노인네들의 사대주의 근성이 아니꼽기 짝이 없
었지만, 김삿갓은 술을 마시면서 이미 생각해둔 게 있어 눌러 참았다.
  “사서삼경까지는 못 배웠지만 「천자문」은 조금 배웠습니다.”
  “으하하하…”
  네 노인은 포복절도했다. 천자문을 조금 배운 주제에 시를 짓겠다니 이웃집
소가 웃을 일 아닌가. 그러거나 말거나 김삿갓은 일필휘지로 시를 휘갈겨 탁자
에 놓고는 자리를 떴다. 명월이 종종걸음으로 쫓아왔다.
  “저, 소연언니는 안 만나보실거예요?”
  “내일 이맘때쯤 만세교로 좀 나오너라. 내 오늘은 바삐 갈 데가 있어서…”
  말을 마치자 김삿갓은 뒤도 돌아보지 않고 자취를 감추었다. 시를 읽은 노인
들로부터 봉변이라도 당할까 저어되어서였다.

  日出猿生原(원 생원)     해가 뜨니 원숭이가 들로 기어 나오고
  猫過鼠盡死(서 진사)     고양이가 지나가니 쥐가 모두 죽는다.
  黃昏蚊簷至(문 첨지)     황혼이 깃드니 모기가 처마 밑으로 기어들고
  夜出蚤席射(조 석사)     밤이 드니 벼룩이 자리에서 쏘아대네.

  방랑길에서 만난 건방진 선비들을 골려주던 단골수법으로 네 노인네의 성과
호칭을 변자(變字)하여 각각 원숭이 쥐 모기 벼룩으로 둔갑시킨 시였다. 시를
돌려 읽은 네 노인네는 길길이 뛰고 앙앙불락하며 애꿎은 명월이만 닦달했다.

  소연도 명월을 따라와 만세교 위에서 김삿갓을 기다리고 있었다. 소연은 함흥
제일의 명기라 그런 자리에 나올 정도로 처신이 가볍지 않았다. 그러나 어제
저녁 명월로부터 자초지종을 전해 듣는 순간, 그가 김삿갓이 틀림없을 것이라
는 예감에 가슴을 졸이며 나왔던 것이다. 몇 달 전 금강산의 공허스님으로부터
김삿갓 얘기를 듣자마자 그 풍부한 시세계와 호방한 방랑기질에 마음을 사로잡
혔기 때문이었다.
  “이렇게 나와주어서 고맙구나. 어제는 나 때문에 노인네들에게 엄청 수모를
당했을텐데 미안하게 됐구나.”
  “꾸지람을 듣기는 했지만 저도 통쾌했는걸요. 선생님 말씀을 드렸더니 소연
언니께서 함께 오시기를 자청하여 모시고 나왔습니다.”
  “오오, 자네가 소연인가. 나는 정처 없이 떠도는 걸객으로 강원도 산골을
지나다가 자네 모친 댁에서 하룻밤 신세를 진 일이 있었지. 모친께서 혹 자네
를 만나거든 안부나 전해주라 하셔서 함흥에 온 김에 기별을 넣게 되었네. 모
친은 말씀이 없었지만, 이제 보니 자네는 천하절색일세그려.”
  함흥 제일의 명기로 이름을 날리게 될 때까지 소연은 더러 남정네 품에 안긴
적도 있었지만, 김삿갓을 대하는 순간 숫처녀처럼 가슴이 설레고 까닭 없이 부
끄러워졌다.
  “조선 제일의 풍류시인이신 삿갓선생님을 직접 뵈게 되다니 생애 최고의 영
광입니다. 제 어미까지 만나셨다니 전생의 인연인가 합니다.”
  목소리까지 떨어가며 이야기를 마친 소연의 얼굴이 귀밑까지 빨개졌다. 김삿
갓은 깜짝 놀랐다.
  “아니, 자네가 나를 어이 아는가?”
  “달포 전 기린산에 있는 정수암에 불공을 드리러 갔다가 장안사에서 오셨다
는 공허스님이란 분을 만났습니다. 그 분께서 제 시를 보시고는 삿갓선생님 얘
기를 해주셨습니다. 공연히 시 짓기 내기를 걸었다가 번번이 낭패를 보셨다더
군요. 그날부터 삿갓선생님을 한번 뵙기를 학수고대하고 있었는데, 이렇게 일
찍 뵙게 되다니 꿈만 같습니다. 어제 명월이의 얘기를 듣자마자 틀림없이 선생
님인 줄 알고 이렇게 마중을 나왔습니다.”
  “허허, 공허스님께서 함흥을 다녀가셨군. 장안사에서 뵈온 지가 벌써 몇 해
던고…”
  “예서 이러실 게 아니라 저희 집으로 가시지요. 저희 집이 멀지 않습니다.”

  소연의 집은 가까운 산기슭에 있었다. 아담한 기와집에 뜰에는 매화나무 몇
그루가 가지런하게 자라고 있었다. 방안에는 이태백과 왕유의 시집이 놓여 있
고, 벽에는 왕유의 시 「춘계문답」이 족자에 걸려 있었다.
  “왕유의 「춘계문답」을 좋아하는 모양이로구나.”
  “뜻을 깊이 이해할 수는 없으나 오만함을 훈계하는 내용 같아서 써봤습니다.”
  “아니 이 글을 네가 직접 썼단 말이냐!”
  “교방(敎坊. =기생학교)에 다닐 때 조금 배웠으나 재주가 비천합니다.”
  “아니다, 아니야. 신사임당을 능가하는 솜씨다.”
  “그리 놀리시면 부끄럽습니다.”
  소연의 얼굴이 금새 빨개졌다. 그때 명월이 술상을 들여왔다.
  “언니, 저는 이만 가볼게요. 선생님, 우리 언니 잘 좀 다독거려주세요. 어
제 제 이야기를 들은 후 한숨도 못 자고 선생님만 기다렸답니다.”
  명월은 고개를 숙여 인사하고는 밖으로 나갔다.

  술을 따르는 소연의 손이 가늘게 떨리고 있었다.
  “기녀로서 여러 남정네에게 술을 따랐지만 이렇게 설레기는 처음입니다.”
  소연의 미색에 마음이 끌려 안방까지 따라온 김삿갓은 그녀의 필재(筆才)에
흠뻑 취한 데다 술을 따르는 손이 떨리는 걸 보자 걷잡을 수 없을 만큼 연모의
정이 일었다.
  “허허, 누구 애간장을 녹이려고 그런 말을 하는고? 허나 나는 한낱 걸객에
불과하니 그대의 마음을 감당하기 어렵구나.”
  “제 비록 아둔한 계집이지만 삿갓선생님의 고매한 인품은 익히 알고 있습니
다. 사람에게 외관이 뭐 그리 중요하다고 저를 떠보십니까? 서운한 말씀 마시
고 잘 이끌어주십시오.”
  참으로 오랜만에 겪어보는 진솔한 마음이었다. 술이 절로 술술 넘어갔다. 주
흥이 도도해지자 소연은 가야금을 내다 줄을 고르기 시작했다. 일렁이는 촛불
아래 한복을 곱게 차려입고 가야금을 타며 노래하는 소연의 모습은 영락없는
선녀였다. 그러나 함경도 민요 「애원성」은 곡이 워낙 애절한데다 소연의 간
드러진 목소리와 환상적인 조화를 이루었다. 김삿갓은 선녀가 승천하는 모습을
지켜보며 멍하니 서 있는 나무꾼의 심사로 소연의 애절한 소리를 듣고 있었다.
  “천하절색에 소리까지 그리 잘하면 날더러 어이하란 말이냐.”
  그 한마디에 소연은 조용히 술상을 옆으로 밀치더니, ‘헉!’ 하는 콧소리와
함께 품속으로 무너져 내렸다. 20대 후반의 젊은 피가 끓어오르는 두 남녀는
금방 열락으로 빠져들었다. 소연은 날이 새도록 끝 간 데를 모르고 달아올랐다.
비로소 삼생의 인연을 만난 것이다. 삼생의 인연이란 전생과 금생과 내생에서
내리 인연을 가진 천생배필이니, 몇 겁을 돌아야 만날 수 있을까말까 한 천지
신명의 은총이다.

  다음날부터 소연은 김삿갓을 안내하여 함께 함흥 일대의 절경과 명산고찰을
찾아다녔다. 절세미인과 함께 바라보는 명승지는 어느 때보다 가슴속에 깊이
각인되었다. 김삿갓은 가는 곳마다 시를 지어 더러는 소연에게 선물하기도 하
고, 더러는 바랑 속에 갈무리하기도 했다.

  “선생님. 평생 저와 함께 좋은 경치나 구경 다니며 제 곁에 있어주세요.”
  소연은 들은 바가 있어 언제 김삿갓이 훌쩍 자신을 떠나버릴지 자나 깨나 불
안하기 그지없었다. 처음 기적에 이름을 올렸을 때 기방의 법도에 따라 몇 차
례 남정네의 품에 안긴 적은 있었지만, 함흥 제일의 기녀로 명성을 얻은 뒤부
터는 시답잖은 유혹을 일체 거절한 채 시와 소리를 벗 삼아 기품을 유지해오던
참이었다. 그러나 공허스님으로부터 김삿갓의 얘기를 듣는 순간, ‘아, 이 남
자야말로 천생연분이겠구나. 어떻게 해서든 그를 내 곁에 잡아둬야 하리’ 하
고 가슴에 담아두고 있었다.
  어느 달 밝은 밤이었다. 나란히 대청에 앉아 달구경을 하던 김삿갓이 입을
뗐다.
  “자네는 아직도 내가 그리 좋은가?”
  소연은 부끄러움에 얼굴을 빨갛게 물들이며 비녀만 만지작거렸다. 그 모습에
반해 김삿갓은 시를 한 수 읊조렸다.

  對月紗窓弄未休     창가에 마주 앉아 희롱하다 보니
  半含嬌態半含羞     그 모습 수줍은 것도 같고 애교스럽기도 하네.
  低聲暗問相思否     그토록 좋으냐고 조그맣게 물으니
  手整金鎈笑點頭     금비녀 매만지며 고개만 끄덕이네.

  시를 듣자마자 방안으로 달려가더니 소연은 지필묵을 가지고 나왔다.
  “방금 읊으신 시를 글로 써주십시오.”
  “이 사람아, 글씨는 자네가 명필이니 직접 쓰게나.”
  “선생님의 글씨를 족자로 만들어 걸어두고 오래오래 보려고 그럽니다.”
  말을 해놓고 소연은 눈물을 주르륵 흘렸다. 아무리 붙잡아도 언젠가는 바람
처럼 떠날 줄을 그녀도 알고 있었다. 그 또한 숙명이려니… 김삿갓도 그녀가
흘리는 눈물의 의미를 알고 있었다. 그는 말없이 먹을 듬뿍 묻혀 방금 읊었던
시를 정성껏 한지에 옮겼다. 김삿갓의 글씨는 그야말로 달 밝은 밤하늘을 날아
가는 한 마리 기러기요 봄날 강둑에서 휘날리는 한 그루 수양버들이었다.

  김삿갓이 소연의 집에 머문 지 어언 반년이 지나 시절은 겨울로 접어들었다.
소연에게 깊이 빠져들수록 김삿갓은 하루라도 빨리 함흥을 떠나야겠다고 결심
을 굳혀가고 있었다. 자칫 미적거리다가는 평생 포로가 되기 십상이었다. 그러
던 어느 날이었다. 새벽에 잠이 깨니 온 천지가 눈으로 하얗게 덮여 방안까지
훤했다. 김삿갓은 조용히 일어나 행장을 꾸렸다. 번잡한 작별의 수고를 덜기
위해 몰래 떠나고자 함이었다. 김삿갓은 소리 없이 방문을 열고 뜨락으로 내려
서서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휘적휘적 길을 나섰다. 방안에서는 오래전에 잠을
깬 소연이 벽을 향해 누워 하염없이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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