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 삿갓

금강산도 식후경이라

깊은산속 2010. 8. 10. 10:48

 

  김삿갓은 회양을 벗어나 통천땅으로 접어들었다. 금강산을 둘러싸고 있는 고
성 통천 회양 땅은 백두대간의 등줄기에 해당하는 곳이라 어디를 가나 험준하
기 그지없었다. 더욱이 통천은 회양에 비해 지대가 높다보니 회양에서 이미 복
숭아꽃 살구꽃이 핀 걸 보고 왔건만 꽃은커녕 골짜기마다 잔설이 수북했다. 앞
에 산성이 하나 나타났다. 성루에 오르니 북쪽은 천 길 낭떠러지를 이루고 있
었다. 한참을 앉아 있자니 나무를 잔뜩 짊어진 젊은이가 성루 아래 이르러 지
게를 내려놓고 쉬고 있었다. 김삿갓은 성루를 내려와 나무꾼에게 다가갔다.
  “말 좀 물읍시다. 여기가 대체 어디요?”
  “철령이라고 합니다.”
  철령. 광해대왕 때 재상 이항복이 당파싸움에 휘말려 함경도로 귀양을 가던 
중 억울한 처지를 호소하는 시조를 지은 곳이다. 
   철령 높은 봉에 쉬어가는 저 구름아 
   고신원루(孤臣寃淚. 외로운 신하의 억울한 눈물)를 비삼아 띄어다가
   임 계신 구중심처(九重深處. =궁궐)에 뿌려본들 어떠리. 
  “양주서 금강산 구경을 가는 길인데 어느 쪽으로 가야하오?”
  “저런! 길을 잘못 들었군요. 금강산을 가려면 회양에서 동쪽으로 단발령을 
넘어야 하는데 북쪽으로 들어섰네요. 이대로 계속 가시면 금강산과 점점 멀어
집니다.”
  “허허, 그러면 회양으로 되돌아가야겠구려.”
  “저쪽으로 가면 직접 단발령으로 갈 수도 있는데 길이 몹시 험합니다.”
  “고맙소이다.”
  김삿갓은 나무꾼이 가리켜준 길로 방향을 틀었다.
  나무꾼의 말대로 끊겼다 이어졌다 하는 소로(小路)는 험하기 그지없고 인적
도 없었다. 너댓새 일정이 늦어질테지만 날 받아놓고 떠난 여정이 아니니 급할 
것도 없었다. 수목이 무성하여 갖가지 짐승들이 어지럽게 뛰어다녔다. 짐승이 
많으니 호랑이나 삵도 있겠지만 무서운 생각은 들지 않았다. 맹수에게 물려 죽
는다면 팔자가 거기까지 아니겠는가. 한낮이 기울어서야 험한 산을 하나 넘어 
평지에 내려서니, 쉬지 않고 사흘은 걸어온 듯 기진맥진했다. 갈림길을 만나 
잠시 다리참을 하고 있자니 한 노인이 다가왔다.
  “노인장, 말씀 좀 여쭙겠습니다. 금강산엘 갈려면 어느 길로 가야하오?”
  “오른쪽은 회양으로 가는 길이니 왼쪽 길로 가시오.”
  길은 여전히 험난했다. 힘겹게 산을 하나 넘으면 그보다 험한 산이 나타났다. 
금강산이 가까워질수록 그야말로 첩첩산중이었다. 어디선가 두런거리는 말소리
가 들려왔다. 풀섶을 헤치고 소리를 따라가자니 어법 넓은 복숭아밭이 나타났
다. 복숭아밭 한쪽에 있는 풀밭에서 네 명의 노인들이 술상을 가운데 두고 둘
러앉아 환담을 나누고 있었다. 
  김삿갓은 염치 불구하고 노인들이 앉아 있는 곳으로 다가갔다.
  “어르신네들 평안하셨습니까? 저는 금강산을 찾아가는 김삿갓이라고 하는데, 
요기를 좀 할까 하여 찾아왔습니다.”
  “아니 김삿갓이라니, 무슨 이름이 그 모양인가?”
  “무식한 가문에서는 그렇게 지을 수도 있는 일이지 왜 남의 이름을 가지고 
타박인가?”
  참으로 더 얄미운 ‘말리는 시누이’였다. 아니꼽기 짝이 없었지만 목구멍이 
포도청이라 꾹꾹 눌러 참았다. 그때 다른 노인이 입을 열었다.
  “농으로 하는 얘기니 너무 고깝게 여기지 말게. 이 분은 승진사어른이고, 
이 분은 조좌수어른이고, 이 분은 문첨지어른이고, 나는 오향수라는 늙은이일
세. 우리 네 사람은 막역한 죽마고우로 오늘 봄맞이 술추렴을 나왔다네.”
  이번에는 승진사라고 소개된 노인이 말했다.
  “막 시회를 시작하려던 참인데 젊은이도 글을 배웠거든 함께 즐겨보겠는가?”
  김삿갓은 그들과 어울려 시를 희롱할 생각은 없었다.
  “아니올시다. 저는 글을 배우지 못해 시를 지을 줄 모릅니다.”
  “그렇다면 술과 안주는 넉넉히 가져왔으니 마음 놓고 들게나.”
  시회는 한 사람씩 돌아가며 재미있는 옛날 얘기를 한 뒤 그 얘기와 관련된 
시를 한 수씩 읊는 방법으로 진행되었다. 대부분 음담패설이었다. 한식경이나 
이야기가 계속되는 동안 김삿갓은 술과 음식을 배불리 먹었다.
  “어르신들, 덕분에 배불리 잘 얻어먹고 갑니다. 대단히 고맙습니다.”
  처음부터 김삿갓에게 호의를 보이며 점잖게 얘기하던 오향수가 손을 저으며 
자리에서 일어서려는 김삿갓을 제지했다.
  “이보게 젊은이. 보아하니 글줄이나 배운 사람 같은데 시 한수 읊어보게나. 
밥값은 하고 가야지.”
  “정 그러시다면 농시(弄詩)를 한 수 남기고 가겠습니다.”
  김삿갓은 일필휘지로 시 한 수를 지어 탁상에 내려놓고는 뒤도 안 돌아보고 
걸음을 재촉했다.
  六月炎天鳥坐睡(조좌수)     유월 염천에 새는 앉아서 졸고
  九月凉風蠅盡死(승진사)     구월 찬바람에 파리가 모조리 죽네.
  月出東嶺蚊簷至(문첨지)     달이 뜨니 모기는 처마 밑에 모이고
  日落西山烏向巢(오향수)     해 떨어지자 까마귀는 집으로 돌아간다.
  두말할 것도 없이 네 노인네들의 성과 호칭을 다른 한자로 바꿔 한바탕 골려
준 시였다. 돌려가며 시를 읽은 노인들은 더러 열을 받아 화를 내기도 하고 더
러 김삿갓의 재치와 시재(詩才)에 웃음을 터뜨리기도 했다. 노인들을 뒤로 하
고 다시 산길로 접어드니 배불리 먹은 데다 취기까지 얼큰하여 흥이 도도해졌
다. ‘금강산도 식후경’이란 말이 실감났다. 그처럼 험악하던 산악의 아름다
운 풍광이 오랜만에 시야를 즐겁게 해주었다. 김삿갓은 하루에도 몇 차례씩 지
어 시로 남겼듯이, 눈앞의 풍광을 읊조렸다.
  一步二步三步立     걸음마다 발길을 멈추고 사방을 둘러보니
  山靑石白間間花     푸른 산 흰 바위 사이사이 꽃이 만발했네.
  若使畵工摸此景     화공을 불러다가 이 경치를 그려본들
  其於林下鳥聲何     숲속의 새소리는 무슨 수로 그리겠는가.
  닷새가 지나 어렵사리 단발령에 이르렀다. 원래 천마령이었으나 한 부자가 
이 고개에 올라 금강산을 바라보다가 그 절경에 반해 머리를 깎고 중이 되었다 
하여 단발령으로 고쳐 불리게 된 고개였다. 관동에서는 예로부터 아들 셋은 낳
아야한다고 전해오고 있으니, 하나는 금강산 중이 되고 하나는 호랑이에게 물
려가며 나머지 하나가 남아 가계를 이을 수 있기 때문이라 했다. 전조(前朝. 
=고려)부터 중국에서도 ‘願生高麗國 一見金剛山’이라 하여 금강산 구경을 평
생의 소원으로 꼽았던 금강산, 그러나 불행하게도 안개로 휘장을 둘러놓아 모
습을 볼 수는 없었다. 마음이 깨끗하지 못한 사람이 단발령에 올라서면 금강산
이 모습을 드러내기 싫어 운무로 스스로를 가린다 했으니, 김삿갓은 아마도 아
직 세속의 욕심을 다 비우지 못한 탓이리라 탄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