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발령을 내려와 10리쯤 더 가니 말휘령이 앞을 가로막았다. 힘겹게 오른 고
개 위에는 다섯 채의 객점이 나란히 자리잡고 있었다. 그러잖아도 날은 저물고
온 몸이 덜덜 떨릴 정도로 춥던 참이라 김삿갓은 한 객점으로 들어섰다.
“아이구, 삿갓선생. 아무리 남아하처불상봉(男兒何處不相逢)이라지만 삿갓
선생이 내 집에 나타날 줄은 꿈에도 몰랐소이다. 어서 안으로 드시구려.”
“죄송합니다만 기억에 없는데, 누구신지요?”
“하하하. 삿갓선생은 나를 모를거요. 옛날 영월백일장에서 선생은 최연소자
로 참가하여 장원을 차지했고 나는 최연장자로 참가하여 낙방을 했었다오. 그
때 나는 선생을 본 적이 있소. 이후 선생이 과거를 포기하고 운수객(雲水客)이
되어 삼천리강산을 방랑한다는 풍문을 들었는데, 차마 이렇게 내 집에 나타날
줄은 몰랐소이다.”
주인장은 김삿갓을 한 객방으로 안내한 뒤 오래잖아 술상을 들고 들어왔다.
“예까지 나타난 걸 보면 틀림없이 금강산 구경을 왔을 터, 금강산은 여기서
20리 밖에 안 되니 오늘은 밤새 술잔을 기울이며 지난 얘기를 나누어봅시다.”
“노인장께서는 어쩌다 이 먼 곳에다 객점을 차리게 되었습니까?”
“아우가 장안사 뒤에 있는 불영암에서 중노릇을 하고 있는데, 그 연줄로 이
렇게 팔자에 없는 술장사를 하게 되었지요. 공허스님이라고, 시 하나는 썩 잘
지으니 삿갓선생과 좋은 친구가 될 수 있을게요. 한번 찾아가 보시구려.”
이렇게 줄이 닿은 공허스님은 이후 평생을 두고 김삿갓과 세상의 연결고리가
된다.
“가까이 사시니까 금강산은 자주 가보셨겠군요.”
“웬걸요. 허구한 날 금강산 얘기만 듣고 사니까 마치 내가 다녀온 듯하여
발길이 안 갑디다. 1만 2천봉 8만 9암자라 평생이 걸려도 어차피 다 못 돌아볼
거, 앞으로도 귀동냥으로만 즐기려오.”
주인장은 술 실력도 대단했다. 김삿갓과 대작을 하면서도 전혀 취기가 없었
다.
김삿갓은 날이 밝자마자 금강산을 향해 떠났다. 그날도 금강산은 안개 뒤에
모습을 감춘 채 비경을 열지 않았다. 개울을 끼고 한참을 걸으니 문선교(問仙
橋)가 나타났다. 누군가 ‘여기가 그 유명한 선경이요?’ 하고 물어본 데서 유
래한 다리이름이었다. 금강산은 아직 멧자락의 끄트머리도 내밀지 않았는데,
벌써 선경인가 싶을 정도로 나그네의 시선을 사로잡았던 것이다. 계곡에는 맑
은 물이 시원하게 흘러내리고 안개 사이로 언뜻언뜻 모습을 드러내는 기암절벽
은 아닌 게 아니라 선경을 방불케 했다. 시인 김시습도 금강산을 돌아본 뒤
‘금강산을 구경하며 산에 올라서는 웃기만 했고 계곡에 내려서서는 울기만 했
다’고 썼을 만큼 형언하기조차 어려운 금강산이 한 발짝씩 가까워지고 있는
것이었다.
한참을 더 걸어가다가 김삿갓은 동년배쯤으로 보이는 세 유람객을 만났다.
“노형은 어디로 가는 길이시오?”
“저는 장안사를 가는 길입니다.”
“장안사 가는 길에 명경대가 있는데, 함께 가보지 않으려오?”
명경대는 비운의 마의태자가 망국의 한을 달래던 곳으로 문인, 지사들의 발
길이 잦은 곳이었다. 인근 마하연에는 마의태자의 무덤이 있다. 김삿갓은 두말
없이 일행과 동행했다. 그러잖아도 마의태자의 무덤은 꼭 한번 찾아보고 싶던
곳이었다. 오래지 않아 명경대가 나타났다. 그 앞에는 시퍼런 물이 넘실대는
황천담(黃泉潭)이 있었다. 얼굴을 비춰보면 황천에 갔을 때처럼 그 사람의 행
적이 비춰 보인다는 무시무시한 이름의 소(沼)였다. 마의태자가 매일 찾아와
자신의 모습을 비춰 보며 망국의 책임을 자탄한 곳이라 여기니 가슴이 아팠다.
유람객들은 김삿갓의 감회에 맞춰 발길을 늦추었다. 구름 속에 아득히 망군봉
(望軍峯)이 안개를 뚫고 모습을 드러냈다. 마의태자가 봉우리에 올라 멀리 망
해가는 조국을 바라보며 피눈물을 흘렸다는 봉우리였다.
일행이 마하연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날이 저물고 있었다. 김삿갓은 유람객
들과 작별하고 홀로 마의태자의 무덤을 찾아 나섰다. 마의태자의 무덤은 불지
암 뒷동산에 있었다. 달빛이 교교한 가운데 사위는 고요했다. 열 평도 채 안
되는 터에 초라하게 자리 잡고 있는 무덤 앞에는 어느 때 누가 세워놨는지
‘麻衣太子之墓’라 쓰인 묘비가 쓸쓸하게 서 있었다. 안개비가 내리는 가운데
김삿갓은 밤새 마의태자의 무덤을 서성거리며 천년사직의 업보를 떠안고 평생
속죄의 나날을 보낸 한 서린 넋을 추모했다.
안으로 들어갈수록 금강산은 김삿갓을 깊이 사로잡았다. 서산대사가 거처했
던 백화암과 사명대사가 거처했던 수미암은 두 고승의 애국지심이 떠올라 더욱
시흥(詩興)을 돋우었다. 만폭동에 음각해놓은 큼지막한 글씨는 명종 때 회양군
수로 제수되어 왔다가 금강산에 반해 하루도 거르지 않고 이 등성이 저 골짜기
를 돌아다니며 찬탄을 하고 시를 지은 풍류객 양사언의 필체였다. 그는 아예
금강산에 거처를 마련하고 이름도 양봉래로 바꾸었다. 금강산은 계절에 따라
천변만화(千變萬化)하여 그 변화에 맞춰 봄에는 금강산, 여름에는 봉래산, 가
을에는 풍악산, 겨울에는 개골산이라 불리니, 그 가운데 가장 생명력이 두드러
지는 여름이름을 딴 것이다. 김삿갓도 만폭동에 빠져 노숙을 하며 며칠 동안
머물다가 미진한 가운데 장안사로 걸음을 옮겼다. 장안사는 금강산에 있는 8만
9암자 가운데 표훈사 유점사 신계사와 함께 4대 거찰로 꼽히는 절이다.
만폭동에서 불과 20리 거리인 장안사를, 그러나 김삿갓은 나흘 만에야 도착
했다. 기암괴석과 계곡의 비경이 가는 곳마다 김삿갓을 잡고 놓아주지 않았던
것이다. 잠시 장안사를 둘러본 김삿갓은 절에서 5리쯤 떨어져 있는 불영암으로
올라갔다. 말휘령의 한 객점에서 영월 백일장에 함께 참가했다던 주인장이 일
러준 공허스님을 만나기 위해서였다. 공허스님은 첫눈에도 도가 높아 보이는
노승이었다.
“말휘령에서 ‘시선(詩仙)이 한분 찾아가실테니 대접 잘하라’는 기별을 받
았는데 이제야 오시는구려. 여기저기 붙잡는 데가 많았던 모양이지요?”
금강산에 있는 절이나 암자는 어딜 가도 길손을 반갑게 맞아주었다. 부처님
의 공덕으로 절경을 구경한 신도들의 시주가 넉넉하여 인심이 넘쳐흘렀기 때문
이었다.
“시선이라니요, 당치도 않습니다.”
“말휘령뿐만 아니라 다른 데서도 삿갓선생을 시선이라고들 합디다. 소승도
시를 조금 읊을 줄 아니 어디 한판 겨루어볼까요?”
풍모와는 달리 성격은 짓궂고 급한 모양이었다. 시선이라 부르고도 내기를
자청하는 걸 보면 시재에도 어느 정도 자신이 있는 듯했다. 공허스님은 말을
마치기 무섭게 벽장에서 지필묵을 꺼내더니 일필휘지로 시를 한 수 써내려갔다.
百尺丹岩桂樹下 높고도 붉은 바위 계수나무 그늘에서
柴門久不向人開 사립문 굳게 닫고 열어본 지 오래건만
今朝忍遇詩仙過 오늘은 지나가던 시선이 찾아오셨으니
喚鶴看庵乞句來 학을 타고 암자를 본 뒤 시 한 수 읊어주오.
“스님. 천재시인 매월당도 금강산을 둘러보고 그 절경에 기가 막혀 한 수도
시를 짓지 못했다던데, 저 같은 풋내기가 당키나 하겠습니까?”
“그런 말씀 마시오. 소승은 이미 삿갓선생의 시를 몇 편 구해 읽어봤다오.
매월당보다 나으면 나았지 조금도 못지않더이다.”
“과찬의 말씀이십니다. 그럼 부족하나마 한 수 지어 보이겠습니다.”
矗矗尖尖怪怪奇 우뚝우뚝 뾰족뾰족 괴상하고 기이하니
人仙神佛共堪疑 사람인가 신선인가 귀신인가 부처인가
平生詩爲金剛惜 한 평생 금강산 위해 시 짓기를 아꼈건만
及致金剛不敢詩 정작 금강산을 보고 나니 감히 붓을 못 들겠네.
김삿갓의 시를 읽고 난 공허스님은 무릎을 탁 쳤다.
“과연 시선이시오. 금강산을 보고 시를 못 짓겠다는 이 시야말로 미사여구
로 예찬한 어떤 시보다 뛰어나니 말이오.”
공양 때가 되자 공허스님은 큼지막한 술항아리를 내왔다.
“소승이 오랫동안 곡차를 멀리했는데, 삿갓선생께서 시선에다 주선의 경지
에까지 이르렀다 하니 오늘은 대접삼아 함께 마시리다.”
“이리 극진히 대해주시니 몸 둘 바를 모르겠습니다.”
“불가에서는 오랜 세월 술을 멀리해왔었는데, 인조대왕 때 진묵대사가 말술
을 드시면서 곡차라 이름을 고쳐 부르기 시작한 뒤로는 어느 정도 허용되고 있
답니다.”
“오랜 전통을 과감히 깨뜨린 것을 보면 진묵대사께서는 도가 높은 스님이셨
던 모양이지요?”
“예, 기상이 웅대한 큰스님이셨지요.”
공허스님은 전설 같은 고승들의 득도 내력과 기행을 들려주며 밤을 새워 술
자리를 계속했다.
“공허스님의 이야기를 듣다 보니 백년지기를 만난 듯 의기상통함을 느끼겠
습니다.”
“소승 역시 출가한 지 40년 만에 삿갓선생처럼 의기상투하는 분을 만나기는
처음이라오. 부디 1년이든 10년이든 이 암자에 머물면서 금강산도 구경하시고
밤이면 소승과 곡차를 들며 시문도 농하십시다.”
“각별하신 배려 대단히 감사합니다.”
이튿날부터 공허스님은 금강산을 안내하기 시작했다. 제일 먼저 당도한 곳은
입석봉이었다. 공허스님은 워낙 시를 좋아하여 입석봉 위에서도 시 짓기 내기
를 걸어 김삿갓의 화답에 감탄을 거듭했다.
“삿갓선생. 왜 우리가 오늘에야 만났단 말이오!”
“저야말로 스님 같이 덕이 높으신 분을 만나게 되어 깨우치는 바가 많습니
다.”
“당치않은 말씀. 저 아래 내려가면 동자승이 곡차를 준비해놨을게요. 내려
가시지요.”
입석봉을 내려오니 과연 동자승이 작은 소반에 곡차와 안주를 차려놓고 기다
리고 있었다.
“세상은 금삼척하고(世事琴三尺. 세상일은 석 자 거문고 가락에 실려 보내
고) 인생은 주일배(人生酒一杯)라 하지 않았소이까. 오늘은 백년지기와 천하제
일 명산 구경을 나왔으니 밤새 마셔 봅시다그려.”
김삿갓과 공허스님은 시를 화답하며 곡차를 마셨다. 동자승은 연신 입석봉과
암자 사이를 오가며 곡차와 안주를 날랐다. 공허스님은 종일 시문답을 주고받
고도 모자라 떠오르는 달을 보자 다시 읊조렸고, 이에 김삿갓이 화답했다.
月白雪白天地白 달도 희고 눈도 희고 하늘과 땅도 희구나.(공허)
山深夜深客愁深 산도 깊고 밤도 깊고 나그네의 수심도 깊구나.(김삿갓)
燈前燈後分晝夜 등불을 켜고 끔으로써 낮과 밤이 갈리는구나.(공허)
山南山北判陰陽 산은 음양으로 남과 북을 구분하누나.(김삿갓)
그들은 그예 날이 훤하게 밝아서야 술자리를 파하고 암자로 내려왔다. 이후
에도 공허스님은 하루도 거르지 않고 김삿갓에게 금강산 구석구석을 안내했다.
김삿갓은 아무래도 시간을 너무 많이 빼앗는 것 같아 민망했다.
“스님, 금강산은 저 혼자서도 구경할 수 있으니 스님께서는 수행을 계속하
시지요.”
“산수간을 다니는 것도 수행정진의 한 방법입니다. 설암선사께서는 산중을
여행하시다가 다음과 같은 게송을 읊기도 했다오.”
溪聲自是長廣舌 계곡을 흐는 물소리가 바로 설법이구나.
八萬眞經俱漏洩 팔만대장경을 모두 다 외어주오.
可笑西天老釋迦 우습수다 서역의 늙은 석가님
徒勞四十九年說 49년 동안 헛수고 하셨네요.
그러나 홀로 명승지를 찾아다니며 시를 짓는 게 오히려 자유롭지 않을까 싶
어 이후 공허스님은 암자에 남아 있었다. 김삿갓은 큰 봉우리나 계곡에서는 두
말할 것도 없고 기암괴석 하나, 수목 한 그루에서도 솟아나는 시심을 마음껏
풀어놓았다. 시 몇 수 짓는 동안 여름과 가을이 지나가고 어느새 초겨울이 왔
다. 그날도 김삿갓은 바랑을 짊어지고 일찌감치 숙소를 나섰다.
“이 추위에 어디를 가시려오?”
“금강산이 얼어붙어 너무도 움직임이 없기에 오늘은 파도에 일렁이는 해금
강을 보고 올까 합니다.”
실은 너무 오랫동안 한곳에 머물다 보니 방랑벽이 동하여 이참에 금강산을
떠나려던 참이었다. 김삿갓은 공손하게 합장을 한 채 공허스님에게 허리 숙여
인사를 올렸다. 공허스님도 김삿갓의 속내를 눈치 채고 있었다.
“불영암은 언제든지 드나들어도 좋으니 편히 다녀오시오.”
공허스님은 김삿갓을 향해 합장배례 하더니 시를 한 수 읊었다.
風蕭簫兮 山水寒 바람이 소슬하니 산수가 차갑도다.
浪客一去兮 下復還 방랑객 한번 가면 언제 다시 오려나.
김삿갓도 가슴이 뭉클하여 다음과 같이 화답하고는 발길을 돌렸다.
靜處門扉着我身 조용한 암자에 이 한 몸 의탁하여
賞心喜事任淸進 기쁜 일 즐거운 일 모두 임께 맡겼더니
孤蜂罷霧擎初月 산에는 안개 개고 초승달이 떠올라
老樹開花作晩春 고목에 꽃이 핀 듯 봄이 다시 왔구나.
酒逢好友惟無量 동무 만나 술을 드니 흥취가 무량했고
詩到名山輒有神 명산에서 시를 읊으니 마냥 신이 났네.
靈境不須求外物 선경이 따로 있나 다른 데서 찾지 마오.
世人自是小閑人 한가롭게 사는 스님 그가 바로 신선이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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