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 삿갓

김삿갓(2)

깊은산속 2010. 8. 10. 11:08

사랑에 눈먼 총각

  생전 가본 적이 없어 방향은 잘 모르지만 김삿갓은 금강산이 있는 동북방향
으로 여정을 잡고 천천히 길을 줄여나갔다. 때는 폭염이 내리쬐는 한여름, 눈
앞에 꽤 넓은 강이 나타났다. 한참만에 나타난 사공은 얼굴이 우락부락한 중년
여자였다. 손님은 달랑 김삿갓 혼자뿐이었다.
  “여기가 어디요?”
  “정선땅 광탄나루라오.”
  사공의 노질은 남정네 못잖게 힘차고 날렵했다. 김삿갓은 장난기가 발동하여
은근한 목소리로 사공을 불렀다.
  “여보, 마누라.”
  사공은 김삿갓을 돌아보더니 눈을 흘기며 말을 받았다.
  “내가 어째서 당신 마누라요?”
  “내가 당신 배를 탔으니 내 마누라 아니고 무엇이겠소?”
  김삿갓의 능청에 사공은 빙그레 웃기만 할 뿐 더는 대꾸가 없었다. 한참 만
에 배가 건너편에 닿았다. 김삿갓은 삯을 치르고 배에서 내렸다.
  “아들아, 잘 가거라.”
  김삿갓이 깜짝 놀라 사공을 쳐다보니 빙그레 웃으면서 손까지 흔들고 서 있
는 게 아닌가.
  “예끼 여보시오, 내가 어째서 당신 아들이오?”
  “내 배에서 나왔으니 아들 아니고 무엇이냐?”
  김삿갓은 사공을 바라보며 유쾌하게 한바탕 웃었다.
  “사공, 내가 졌소. 수고 많이 하시오.”
 
  날이 저물고 있었다. 걸음을 빨리하여 한 농가를 찾아갔다.
  “이 근방에 하룻밤 유숙할 만한 데 없을까요?”
  조선조에 나그네가 유숙할 곳은 술을 사 마시면 잠은 공으로 재워주는 객점,
술은 안 팔고 돈 받고 숙식만 제공하는 객정(客亭), 공짜로 양객(養客)하는 넉
넉한 민가, 절이나 서당 등이 있었다. 주머니사정이 넉넉지 못한 선비들은 주
로 서당을 이용했다.
  “여기서 20리쯤 더 가면 서당이 하나 있소.”
  서당에 당도하여 훈장을 찾았다.
  “지나가는 나그네올시다. 하룻밤 신세를 질까 하고 왔습니다.”
  낡은 유관(儒冠)을 쓰고 나타난 훈장은 심히 반갑잖은 표정으로 김삿갓의 아
래위를 훑어보며 물었다.
  “어디서 오는 길손이오?”
  “양주에서 오는 길입니다.”
  양주는 김삿갓이 태어난 고장이었으니 틀린 말은 아니었다. 당시 양주는 경
기도에서 가장 크고 살기 좋은 고장이었다. 올라오라 허락은 하고도 훈장은 떨
떠름한 속내를 숨기지 않았다. 안에서는 10여 명의 아이들이 책을 읽고 있었다.
  “어디로 가는 길손이오?”
  아이들 앞이라 훈장은 목에 힘을 잔뜩 주고 거들먹거리며 물었다.
  “금강산 구경을 가는 길입니다.”
  “어허, 금강산 구경을 가는 걸 보니 가세가 넉넉한 모양이구려. 사람은 책
을 많이 읽어야 하는 법, 댁은 어디까지 읽었소?”
  하룻밤 신세를 져야하는 마당이라 김삿갓은 훈장의 시건방지기 짝이 없는 질
문에 공손하게 대답했다.
  “사서삼경과 고금의 여러 문집을 읽었습니다.”
  그 대답에 책을 읽고 있던 아이 가운데 하나가 김삿갓을 유심히 쳐다보았다.
  “그렇다면 학문이 대단하겠구려.”
  훈장의 태도가 눈에 띄게 달라졌다.

  그때 60줄의 노인이 들어섰다. 의관을 정제한 풍채 좋은 노인이었다. 훈장은
서둘러 자리에서 일어섰다.
  “아이구 풍헌영감님, 어서 오십시오. 어인 행차십니까?”
  훈장은 풍헌을 아랫목으로 모셨다. 풍헌이란 오늘날로 치면 동네이장쯤 되는
사람인데, 돈이 많고 씀씀이가 넉넉한 사람에게 대접삼아 붙여주는 호칭이었다.
  “아, 하던 얘기는 끝을 내야 할 것 아니오.”
  “그 얘긴 있다가 주막에 나가서 조용히 하시지요. 여긴 아이들도 있고 하
여…”
  “그럴까 그럼.”
풍헌은 긴히 할 말이 있어 들린 모양이었다. 풍헌은 그제야 생각이 난 듯 김
삿갓을 보더니 훈장에게 물었다.
  “어디서 손님이 오신게군요?”
  “참, 이리 와서 인사 올리시오. 이 분으로 말씀드리자면 우리 서당의 당주
이신 조풍헌영감님이시오. 풍헌영감님, 이 젊은양반은 양주사람으로 금강산 구
경을 가는 길이랍니다. 사서삼경에 여러 문집까지 읽었다 하니 매우 박식한 청
년인가 봅니다.”
  “그렇다면 훈장께서 오랜만에 좋은 글동무를 만난 셈이구려.”
  훈장은 아이들을 보내고 술상을 들여왔다. 덕분에 김삿갓은 소찬이지만 저녁
밥과 함께 기대하지 않았던 공술을 몇 잔 얻어 마셨다.

  술상을 물리자 훈장은 풍헌을 모시고 주막으로 갔다. 요긴한 이야기가 있다
손 치더라도 홀로 떼놓고 간 처사가 서운하여 김삿갓이 입맛을 쩝쩝 다시며 앉
아 있자니, 십사오세 가량 되어 보이는 학동이 서당으로 들어섰다. 다른 아이
들이 「천자문」이나 「동몽선습」을 읽고 있는 가운데 혼자 「사략(史略)」을
공부하던 학동이었다.
  “선생님을 좀 뵈러 왔습니다.”
  “무슨 일인가?”
  “저는 풍헌어른의 아들입니다. 어떤 사람으로부터 편지를 한 장 받았는데
저로서는 도무지 무슨 뜻인지 모르겠습니다. 내용을 모르면 큰일이 납니다. 선
생님께서는 조금 전에 우리 훈장님께 책을 많이 읽었다고 말씀하셨는데, 부디
이 편지를 좀 해석해주십시오.”
  김삿갓을 유심히 쳐다보던 아이였다. 소년은 매우 영민해 보였다. 소년이 내
민 하얀 선지(宣紙) 한복판에는 오로지 ‘籍’이라고만 씌어 있었다. 필체도
상당한 수준이었다. 그러나 문서를 뜻하는 ‘籍’자만 가지고는 글쓴이의 의중
을 알아낼 길이 없었다.
  “이 편지는 누가 어떤 연유로 네게 보낸 것이냐?”
  소년은 얼굴을 붉힌 채 사연을 얘기했다. 소년은 산 너머 마을에 사는 현진
사의 고명딸 보옥을 사모하고 있었다. 소년보다 두살 위인 보옥은 미색일 뿐만
아니라 공부도 많이 했다. 소년은 현진사댁 여종을 매수하여 닷새만에 한번씩
모두 열차례에 걸쳐 한번 만나달라는 간곡한 편지를 보냈는데, 일자무소식이다
가 최근에 보낸 답장이 ‘籍’이라는 단 한 글자였다. 사연을 다 듣고 나자 김
삿갓은 크게 한바탕 웃고는 소년의 답답증을 풀어주었다.
  “너의 구애공세가 성공을 거둔 모양이다. 이 근방에 대밭이 어디 있느냐?”
  기억을 더듬던 소년은 여전히 의아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현진사댁 뒷동산에 대밭이 있습니다만…”
  “그러면 됐다. ‘籍’이라는 글자를 풀어보면 ‘竹 + 來 + 艹 + 一 + 日’
아니냐?”
  “예, 그런데요?”
  소년은 무릎걸음으로 김삿갓 곁에 바짝 다가와 앉았다. 입술이 바삭바삭 타
들어가는 듯했다.
  “그런데요는 무슨 그런데요. 해자(解字)하면 스무하룻날 대밭으로 오라는
뜻이 아니겠느냐.”
  소년의 표정이 활짝 펴졌다.
  “아, 그렇군요. 말씀 듣고 보니 이해가 되네요. 선생님, 정말 감사합니다.
이제야 살았습니다. 오늘이 스무날이니까 내일이 바로 스무하룻날입니다. 해석
을 못해 내일 그곳에 나가지 못했더라면 얼마나 큰 웃음거리가 되었겠습니까!”
  소년은 일어나 김삿갓에게 큰절을 올리고 물러갔다.

  이튿날 아침이었다. 훈장은 어디 가서 뭘 하는지 그때까지 돌아오지 않고 어
젯밤에 다녀갔던 조풍헌이 들어섰다.
  “삿갓선생, 정말 고맙습니다. 아들놈에게 자세히 얘기 들었습니다. 그 아이
는 제게 하나밖에 없는 외아들인데, 선생 덕분에 현진사댁 규수와 만날 수 있
게 되었다니 이런 은혜가 어디 있겠습니까? 그러잖아도 나이 열넷이 되도록 혼
처를 정하지 못해 시름이 깊던 중입니다.”
  “예, 잘된 일이지요. 그런데 어제 밤에 같이 나가신 훈장어른이 아직…”
  조풍헌이 말허리를 잘랐다.
  “훈장은 어젯밤 내가 공을 들여온 한 과수댁과 붙여주었으니 아직까지 이불
속에서 헐떡거리고 있을게요."
  “아하, 그래서 두 분이서만 가신게로군요.”
  조풍헌은 몇 차례 사양하는 김삿갓을 집으로 모셔갔다. 조풍헌의 집은 시골
에서는 보기 드물게 고래등같이 큰 기와집이었다. 좌정하자마자 진수성찬이 들
어왔다. 그러나 김삿갓의 구미를 당긴 것은 산해진미가 아니라 코끝을 간질이
는 주향(酒香)이었다. 입안 그득 향취를 풍기며 부드럽게 목으로 넘어가는 술
은 오랜만에 맛보는 가주(佳酒)였다.
  “크~, 제가 오늘 사주에도 없는 호강을 하나봅니다. 그나저나 이렇게 폐를
끼쳐도 되는 일인지…”
  “무슨 말씀을요. 마음 놓고 많이 드십시오.”
  “그런데, 자제분이 안 보입니다.”
  “아니, 삿갓 선생께서 오늘 진사댁 뒤에 있는 대밭으로 가라고 가르쳐주지
않았습니까? 그래서 그 댁 규수가 언제 나올지 몰라 새벽같이 달려갔답니다.”
  “허허허, 아무러면 양가댁 규수가 남의 이목이 있는 대낮에 밀회를 하러 나
오겠습니까? 해가 지고 달이 떠야 나올 것을.”
  “이런이런, 미련한 시골 태생이라 거기까지는 생각이 못 미쳤습니다.”
  김삿갓이 해자를 하면서 짐작컨대 영특한 규수는 스무하룻날 달이 뜰 때, 요
즘 시각으로 치면 밤 열시쯤에 소년을 만나자 한 것이었다.

  아침상을 물리자마자 길을 떠나려던 김삿갓은 조풍헌의 간곡한 만류로 밤이
이슥하도록 입안에서 살살 녹는 미주(美酒)를 마시며 소년을 기다리고 있었다.
  “아니 삿갓선생. 달이 떴는데도 왜 아이가 돌아오지 않는걸까요? 조반도 안
들고 갔는데…”
  “사랑에 눈이 멀면 사나흘 굶어도 끄떡없을테니 걱정 마십시오. 그리고 청
춘남녀가 어렵사리 만났는데 쉽게 헤어지겠습니까? 진사댁 규수도 자제분이 어
려운 문제를 푼 끝에 찾아왔으니 매우 만족하여 이야기가 길어지고 있을 것입
니다.”
  풍헌은 김삿갓의 족집게 유추에 크게 안도하면서 연신 입이 쩍쩍 벌어졌다.
자정이 지나서야 아들이 돌아왔다. 
  “어버님, 다녀왔습니다.”
  소년은 김삿갓을 향해 넙죽 큰절을 올린 뒤 무릎을 꿇고 사례했다.
  “선생님 덕분에 보옥낭자를 만나고 돌아왔습니다.”
  “오랜 소원을 풀었다니 다행이다. 그래, 낭자는 마음에 들던가?”
  “이르다 뿐이겠습니까. 달덩이같이 어여쁜 규수였습니다.”
  “그렇다면 규수도 너를 흡족히 여기더냐?”
  “예. ‘籍’자만 보고 어떻게 나왔느냐고 묻기에, 사흘 동안이나 끙끙거리
다가 겨우 뜻을 알아냈다고 대답했더니 매우 만족스러워했습니다.”
  “하하하하하하, 참으로 기민하게 대답했구나.”
  그러나 조풍헌은 아직 더 궁금한 게 남아 있었다.
  “그래, 언제 다시 만나기로 했느냐?”
  “남의 이목도 이목이지만 아버님 환갑잔치 준비로 바빠서 또 만날 수는 없
으니 부모님을 통해 정식 청혼을 넣어달라 했습니다.”
  “환갑이 언제인지는 물어봤느냐?”
  “칠월 열흘날이라 했습니다.”
  “칠월 열흘이라, 앞으로 보름밖에 안 남았구나. 어떻게 청혼을 넣어야 한단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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