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사(野史)

조선을 발칵 뒤집어놓은 스캔들 - 9

깊은산속 2010. 8. 10. 13:33

9. 조카와 통정하여 아들을 낳은 여인 성종 16년(1485) 8월의 어느 날이었다. 대낮부터 빗줄기가 세차게 퍼붓고 있 었다. 태종의 후손인 덕성군의 후처 구씨는 몸을 깨끗이 씻고 곱게 화장을 한 뒤 초조하게 누군가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녀는 열여덟 살에 대부호인 덕성군 의 첩실로 들어왔으나 남편이 일찍 죽는 바람에 30대 후반이 되도록 독수공방 을 하고 있던 참이었다. 덕성군은 정실에게서도 첩실인 구씨에게서도 후사가 없자 역시 태종의 후손인 영인군 순을 양자로 들였는데, 순은 성질이 포악하고 탐욕스러워 덕성군이 죽자 재산과 600여 명의 노비를 몽땅 빼앗아가 버렸다. 구씨는 드넓은 집에서 여종 둘을 데리고 힘겹게 살아가고 있었다. 기다리던 사람은 땅거미가 내리기 시작할 무렵에야 대문을 열고 들어섰다. “이모.” 구씨는 서둘러 대청으로 나가 조카를 맞았다. 삿갓과 도롱이를 쓰고 있었지 만 굵은 빗줄기에 온 몸이 흠뻑 젖어 있었다. 구씨는 수건을 가져다 조카의 몸 을 구석구석 닦아주었다. 언니의 아들 이인언이었다. 그는 과거를 보기 위해 고향 금산에서 올라와 구씨 집에서 기숙하고 있었다. 인언은 기골은 장대한 반 면 성격은 온순하여 금방 다른 사람의 환심을 사는 스타일이었다. 그가 사랑방 을 차지하고 공부를 하기 시작한 첫날부터 구씨는 오랜만에 사는 맛이 났다. 인언은 생활비도 가져올 겸 고향에 볼일을 보러 갔다 올라오는 길이었다. “할멈과 언년이는 어디 갔나요?” “응, 절에 좀 보냈다.” 그 대답에 인언은 마음 놓고 이모를 끌어안더니 진하게 입을 맞추었다. 한두 번 해본 솜씨가 아니었다. 언제나 그렇듯이 구씨는 단번에 달아오르기 시작했 다. 인언이 고향에 간 며칠 동안이 여삼추 같던 참이었다. 이 아이가 없으면 도저히 살아갈 수 없을 것 같았다. 두 사람은 곧 알몸이 되어 뒹굴었다. 구씨가 인언과 처음 통정한 것은 그가 기숙하기 시작한 지 사흘 뒤부터였다. 구씨는 인언을 친아들처럼 생각하여 들어오던 날부터 정성을 다해 돌보고 있었 다. 그날은 인언이 허벅지에 종기가 났다 하여 바지를 내리게 하고 약을 발라 주었던 것인데, 인언은 이를 유혹으로 받아들였는지 새벽에 구씨의 이불 속으 로 파고들어왔다. 그리고는 구씨가 채 영문을 파악하기도 전에 발기한 몸가락 을 이모의 비기에 깊숙이 찔러넣었다. “너 이게 무슨 짓이냐? 부지런히 공부하여 과거에 급제할 생각은 않고 이모 한테 어떻게 이런 못된 짓을 하느냐?” 그러나 달아오른 인언의 귀에 이모의 힐난이 들어올 리 없었다. “이모, 죽을죄를 졌어요. 저를 용서해주세요. 저 오래 전부터 이모를 사랑 하고 있었어요.” 구씨도 더는 조카를 밀쳐낼 수 없었다. 어디선지도 모를 깊숙한 곳에서 주체 할 수 없는 희열이 솟구쳐 전신으로 번지기 시작한 것이다. 20년 가까이 남자 맛을 모르고 외롭게 지내온 터, 30대 후반의 농염한 여체는 몸가락의 주인을 따질 계제가 못되었다. 구씨는 이불자락을 입에 물고 신음을 삼켰다. 혹여 두 여종이 들을까 해서였다. 스무 살 청년의 정력은 구씨를 금방 구름 위로 붕 띄 웠다. 구씨는 자지러졌다. 그날 이후 조카는 새벽마다 안개처럼 안방으로 스며들어와 구씨의 품을 헤집 었다. 구씨는 하루도 방사를 거를 수 없었다. 오랜 수절 뒤의 정사는 일시에 구씨의 요부기질을 일깨웠다. 두 사람의 표정과 몸짓은 한층 은밀해졌다. 들통 이 나는 날에는 두 사람 다 목숨을 부지할 수 없지만 우선은 육체의 불이 더 간절했다. 두 사람의 관계를 아는지 모르는지, 여종인 할멈과 언년이는 묵묵히 제 할 일만 하고 있었다. 국법상 그들은 구씨의 통정사실을 안다 해도 고변할 수 없는 신분이었다. 노비가 주인을 고변하는 일은 강상의 죄로 다스리기 때문 이었다. 그러나 어쩌다 아는 사람에게 발설이라도 하는 날이면 사단이 나는 것 이다. 구씨는 6백여 명의 노비를 거느릴 때부터 두루 인심을 베풀었기 때문에 아랫것들이 고변할 염려는 없었지만, 그래도 알려지는 것 자체가 수치스러워 극도로 조심하고 있었다. 그러나 생리적인 문제는 조심한다고 해결될 일이 아니었다. 몇 달 동안 방사 가 계속되자 구씨의 배가 불러오기 시작한 것이다. “인언아, 내가 잉태를 한 것 같은데 어찌하면 좋겠느냐?” 답답해서 물어본 말일 뿐 어린 조카가 시원한 해답을 제시할 리는 만무했다. “이 일이 세상에 알려지면 우리는 죽은 목숨이잖아요. 아이를 없앨 수는 없 나요?” “그러기에는 너무 늦은 것 같구나.” “그러면 아이를 낳아서 아무도 몰래 어디다 숨기세요.” 인언은 다음날로 보따리를 싸서 금산으로 내려가 버렸다. 그가 떠나자 구씨 는 세상이 무너진 듯 막연했지만 달리 도리가 없었다. 몇 달 뒤, 구씨가 진통을 시작하자 언년이가 놀라 달려가 양아들 순에게 고 했다. 순은 부인을 데려와 사태를 파악한 뒤 산파를 불러 구씨를 돌보게 했다. 구씨는 이튿날 옥동자를 낳았다. 순과 그의 처는 양어머니가 아이를 낳자 짐짓 노발대발했다. 구씨는 소문이 새나가면 집안 망신이라며 그들을 진정시키려 했 지만 듣지 않았다. 순 내외는 어떻게든 구씨를 구렁텅이에 빠뜨려 이미 가져간 재산을 합법적으로 차지하고 싶었던 것이다. 순은 아이를 빼앗아 친아버지에게 데려가 자초지종을 고하고 관가에 고변하겠다며 흥분했다. “너는 덕성군의 양자이니 자식이 어버이를 고변할 수는 없다. 내가 전하께 아뢰마.” 이튿날 순의 친아버지 옥산군 제는 대궐로 들어가 성종에게 아뢰었다. 성종 은 대노했다. 성종은 즉시 순을 불러 구씨가 누구와 통정했는지를 캐물었다. 순은 통정 여부는 알 수 없지만 구씨 사랑에 조카 이인언이 들어와 살다가 자 취를 감췄다고 아뢰었다. 인언이 잡혀왔다. 한편 성종은 내시와 의녀를 보내 구씨의 집안을 수색하고 산모를 돌봐주도록 명했다. 구씨 집을 구석구석 뒤지던 의녀는 어안이 벙벙했다. 한때 대부호로 소문이 자자하던 덕성군의 집에 산모를 조리할 가재도구나 피륙이 아무것도 없었다. 아이를 낳은 산모가 홑적삼을 걸치고 있건만, 달리 입혀줄 옷 한 벌 변변한 게 없었다. 하는 수 없이 언년이가 입고 있던 옷을 벗어 구씨에게 껴입혔다. 의녀 는 자신의 주머니를 털어 산모가 먹을 음식을 사다주고 궁으로 돌아와 성종에 게 자세히 보고했다. 성종은 기가 찼다. 이모와 조카가 간통하여 아이를 낳은 사건은 한양을 발칵 뒤집어놓았다. 몸 을 추스른 구씨는 의금부에 잡혀와 조카 이인언과 함께 국문을 받았다. 구씨는 모든 걸 체념하고 이실직고했으나 겁에 질린 인언은 거짓 진술을 했다. “저는 이모와 통정한 사실이 없습니다. 이모의 다른 조카인 안계로가 무시 로 출입했는데, 지난 가을 안계로가 이모의 손을 잡고 희롱하는 것을 보았습니 다. 아무래도 안계로가 이모와 간음을 했을 것입니다.” 인언은 형장을 실컷 맞고서야 진상을 털어놓았다. 국문 결과를 보고받은 성 종은 장탄식을 했다. 대사헌 이경동은 영인군 순의 죄상도 주달(奏達)했다. “구씨는 과부로 있으면서 두 종만 데리고 궁핍하게 살고 있었사옵니다. 가 세가 넉넉했다면 이 지경에 이르렀겠사옵니까? 양모를 제대로 봉양하지 않고 오히려 재산을 갈취한 순도 죄를 물어야 할 것입니다. 또한 순의 처도 구씨가 숨기려는 진상을 기어이 밝히려 하였으니 강상의 죄에 준한다 할 것입니다.” 잇달아 순과 그의 처도 국문을 받았다. 구씨와 이인언은 다음날로 교수형에 처해졌다. 성종은 패악한 순으로부터 덕성군의 양자 지위를 박탈한 뒤 빼앗아 갔던 재산을 국고로 환수하고 부부를 경상도 안음으로 유배시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