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사(野史)

조선을 발칵 뒤집어 놓은 스캔들 - 10

깊은산속 2010. 8. 10. 13:30

10. 양도와 정도를 다 갖추고 태어난 사방지 사방지는 양성을 동시에 갖추고 태어났으나 용모와 목소리는 절색의 여아였 다. 어미는 깊은 한숨을 내쉬며 치마저고리를 입히고 머리를 땋아주어 딸의 바 람대로 여자애들과 어울려 놀게 했다. 어미가 죽자 고모가 사방지를 거두어 살 림살이를 가르쳤는데, 사방지는 이때 배운 뛰어난 바느질 솜씨로 호구지책을 삼게 된다. 고모부 김연이 계유정난 때 안평대군 편에 줄을 서면서 사방지의 운명도 타고난 사주팔자로부터 엉뚱한 방향으로 흘러가고 말았다. 수양대군은 안평대군을 꺾은 뒤 단군을 폐하고 왕위에 앉자 고모부 김연을 처형하고 고모 를 노비로 강등시켰다. 사방지의 신세가 일시에 끈 떨어진 연이 된 것이다. 사방지는 출가를 결심하고 여승 중비가 수련하고 있는 암자에 들어가 행자노 릇을 시작했다. 워낙 절색인데다 무슨 일이든 잘하여 그녀는 이내 중비의 신임 을 얻었다. 암자에는 한 중년여인과 처녀가 곁방을 쓰고 있었는데, 사방지는 그들과 한방에서 잤다. 중년여인은 사방지의 미색과 바느질 솜씨를 어여삐 여 겨 곁에 데리고 자던 중, 잠결에 우연히 사방지의 양도(陽道)를 확인하고는 반 색을 하며 통정했다. 바로 곁에서 자던 처녀도 중년여인의 감창소리에 음욕을 억제하지 못하고 그날로 사방지와 통정했다. 맨 마지막으로 눈치를 챈 여승 중 비는 사방지와 통정한 뒤 그 맛을 못 잊어 환속하여 사방지와 살림을 차렸다. 한동안 운우지정을 즐긴 중비는 사방지를 김구석의 처 이씨에게 소개했다. 김 구석의 처 이씨는 우의정 이순지의 딸로 남편 김구석이 일찍 죽어 수절하고 있 었다. 중비는 사방지의 바느질 솜씨에 기대 먹고살기 위한 방책으로 그리했으 나, 결과적으로 썩 잘못된 선택이 되고 말았다. 김구석의 집안은 당대의 명문세가로 아들은 정인지의 사위였다. 사방지의 빼 어난 자태와 바느질 솜씨에 반한 이씨는 그날로 사방지를 집안에 들여 여종들 과 한방에서 자도록 했다. 오래지 않아 여종들은 한 사람씩 사방지의 양도를 확인하고 통정했으나 아무도 독차지하고자 욕심내는 사람은 없었다. 낮말은 새 가 듣고 밤말은 쥐가 듣는 법, 사방지의 살맛을 본 여종들은 서로 쉬쉬했으나 소문은 안주인 이씨의 귀에도 들어갔다. 이씨는 사방지를 안방으로 불러들여 오랜만에 여한 없이 회포를 풀더니, 그 기막힌 맛에 아예 안방에 주저앉히고는 노골적으로 운우지정을 즐겼다. 이씨는 사방지에게 고급 비단옷을 해입히고 갖 은 폐물을 사주며 환심을 사기 위해 애썼다. 사방지를 빼앗겨 시샘이 난 여종 가운데 하나가 평소 알고 지내던 사헌부 장령에게 밀고하면서 사방지의 기행이 사헌부에 정식 보고되었다. “사방지는 여장 남자로서 여승 중비, 김구석의 처 이씨 등 여러 여성들과 간음했습니다.” 사헌부는 먼저 최초로 밀고한 이씨의 여종을 잡아다 심문했다. 그녀의 증언 에 따라 사헌부는 사방지와 중비를 잡아들여 조사에 착수했다. 두 사람은 통정 사실을 순순히 자백했다. 아름다운 자태와 탐스러운 가슴을 가진 사방지가 남 자라고 실토하자 사헌부는 경악했다. 사헌부는 내의원의 한 의녀를 불러 사방 지를 조사하게 했다. “사방지에게 정녕 양도가 있더냐?” “예, 양도가 장대합니다.” 사방지의 치마 속으로 손을 넣어 양도를 확인한 의녀는 얼굴이 새빨갛게 변 한 채 종종걸음으로 심문장을 떠났다. 이에 사방지의 옷을 벗기니, 분명 장대 한 양도를 갖춘 남자였으나 그 아래 생생한 정도(精道. ㅂㅈ)까지 갖추고 있었 다. 조사관들은 생전 처음 보는 희귀한 생태에 벌어진 입을 다물지 못했다. 전례가 없는 일이라 사헌부는 곧 세조에게 보고했다. 대신들은 사방지를 고 신(拷訊. =고문)하자고 상주했으나 세조는 허락하지 않았다. “간음 현장을 잡은 것도 아닌데 재상집 일을 함부로 소문내고, 특히 과인에 게 보고도 하지 않고 사헌부가 억지로 조사했으니 옳지 못하다. 이순지를 파직 하고 여승 중비를 국문하되 사방지는 이순지에게 보내라. 명망 높은 재상이니 알아서 처결할 것이다.” 일국의 재상이 출가외인인 딸의 집에 기거하는 조선조 최초의 양성인으로 인 해 파직된 역사적인 사건이었다. 세조의 어명으로 억지조사를 한 사헌부 관리 들은 모두 의금부에 하옥되어 조사를 받았다. 부당한 호기심에 대한 추궁이었 다. 사방지의 일은 민가에도 널리 알려져 한양이 술렁거렸다. 의금부에 의해 조사를 받고 방면된 사헌부 관리들은 사방지를 처형해야 한다 고 상주했다. 세조는 사방지의 일을 더 이상 거론하지 말라고 명했지만 좌의정 권남을 비롯하여 상소가 끊이지 않았다. 그러나 세조는 사방지의 가련한 처지 를 동정하여 그녀를 이순지의 종으로 하사했으며, 이순지는 사방지를 자신의 시골집에서 살도록 했다. 세월이 흘러 이순지가 죽자 딸 이씨는 다시 사방지를 한양으로 불러올려 열락을 즐겼다. 참수되는 한이 있더라도 그 맛을 도저히 잊 을 수가 없었던 것이다. 오래지 않아 소문이 다시 사헌부에 전해졌고, 보고를 받은 영의정 신숙주와 우의정 한명회가 잇달아 사방지를 처형할 것을 상주했다. “이 사람은 인류가 아니다. 따라서 인륜을 물어 목숨을 거둘 필요는 없다. 외방의 노비로 내려 보내라.” 어명에 따라 사방지는 관북의 한 외성 노비로 내려갔다. 이후 명종 대에도 임성구지라는 양성 인물이 있어 시집도 갔다가 장가도 들었다가 하여 나라를 소란하게 했는데, 사방지의 전례에 따라 처형하지 않고 변방의 노비로 내려 보 냈다. 사방지는 매우 음란했던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외성의 노비로 내려갔다 면 이번에는 정도(精道)로 수많은 장병들과 스캔들을 일으켰을 법도 하건만, 언로가 막혀 있던 곳이라 불행하게도 전해 내려오는 기록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