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 생일상: 반찬이 많고 사람이 많은것만이 좋은 생일상은 아니라고 본다.간단하면서도 정갈하고 정성이 덤뿍담긴 이런 상이면 좋다.
65세 생일 아침상. 식사를 하려고 하니 " 아참!. 사진부터 한장 찍고" 하다보니 수저가 국그릇에 있습니다.
앞으론 모두가 이같이 해야 할 걸요
생일날
어제가 내 생일날 이였다 세는 나이로 65세, 만으로 64세가 되는 날 이였다. 옛말에 환갑 지난 나이를 남의 나이라고 하지 않았든가.
그렇다면 이제 내가 살아가는 남은 날들은 덤이란 말인가?.
며느리가 생일 전날 장미와 백합꽃이 어우러진 아담한 꽃바구니와 케익을 보내왔고 막내사위와 딸은 이번에 일이 있어 못 온다고 지난 설때 생일 선물이라고 남자화장품 한 셋드를 미리 주고 갔다. 큰딸과 사위는 서울에 유명한 백설기떡 케익점에 준문하여 생일날 오후에 택배로 도착했다. 자녀들은 생일날 아무도 오지 않았다.
내 생일이 음력으로 정월 열아흘에날 이여서 설을 보내고 15일 조금넘은 날이라 멀리 직장 생활하는 자녀들을 휴일도 아닌 평일에 밥 한번 먹자고 원거리를 오라고 말하지 못 하겠드라.
그도 그럴것이 부산에 대구에 수원과 경기 군포에 각자 살림을 하고 직장생활을 하고 있는데 여기 시골에서 생일날 미역국 한번 끓여 배부르게 먹으면 되지, 생일날을 앞으로 땅기고 뒤로 밀고 하여 날을 받아본들 고기류나 그렇지 않으면 비싼 뷔페에 가서 배만 터지게 먹을 일이다.
자녀들은 생일 전날부터 함께하지 못해 미안 하다는 둥 다음엔 제가 직접 생일상을 준비 하겠다는 등 미안하다는 표현 일색이다.
과거와는 달리 요즘엔 인터넷 여러개 싸이트로 부터 생일 축하한다는 메일이 오고 휴대폰 문자멧세지에도 생일 축하한다는 내용이 수두록하다. 나는 이번 설 때에도 자녀들에게 “내 생일엔 아무도 오지 말거라 조금 전에 설이라고 서로가 만났는데 몇 일 되었다고 내 생일에 또 만나느냐.” 하기야 자식들이란 매일 만나도 좋겠지만 멀리서 직장생활하고 어린 아이들 키우느라 정신없이 바쁜 자녀들을 피곤하게 하고 싶은 생각이 없기 때문이다. 자녀들의 입장에서 보면 매우 불편 할 것 같다.
5월이 되면 엄마(시어머니) 생일이 또 기다리고 있는데 그때는 어디 적당한 장소를 찾아 모이자고 하겠지, 그렇게도 못하면 엄마는 서운 하겠지 부모가 살아 있다는 것이 다 무엇이겠는가. 명절 때도 좋지만 부모생일에 자녀들이 다 모여 함께 식사하며 행복해 하는 모습이 삶의 가치를 더해 줄수 있다.
크림이 많은 케익은 이리저리 나누어 이웃집으로 나누어 주고 거실에 놓인 생일 꽃다발은 쉬엄쉬엄 시들어 가는데 그래도 처음 꽃을 대하는 기분은 꽃처럼 기분 좋은게 없다. 비록 크림을 흠벅 먹은 케익이지만 초불을 켜고 내외가 마주 바라보는 것이 쓸쓸하지만 이것 마져 없었다면 더욱 처량해 지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직장생활 할 땐 자의던 타의던 동료들끼리 만나 식사도 하였고, 때론 기분에 따라 노래방에도 가서 목청껏 노래도 불러보고 했었는데, 정년퇴직하고 벌써 7년이 지나고 보니 생일날이 참 어색한것 같기도 하다. 가까운 친지나 형제 자매도 돈 번다고 도시로 다 나가 살고 있고 직장 생활때 가깝게 지낸 지인들과도 시간이 흘르니 저절로 거래가 뜸 하다보니 생일날이리고 초청하기가 망설여 진다
막내딸을 중매한 촌부 부부가 이번 내 생일을 기역하고 상주에서 점심을 하자고 했다. 딸 사돈 내외와 촌부 내외 우리 내외등 6명이 점심을 하었는데 촌부부가 식대를 지불 하려고 한다. 집 내무대신께서 눈치를 살피다 계산서를 먼저 집어 결재를 하였다.
사돈까지 불러 이렇게 자리를 마련한것 만으로도 고마운 일인데 식대까지 부담시키는 것이 미안하고 또 한편으론 감사하였든 것이다.
제 작년 까지는 이러지는 않았다, 막내딸이 집에서 함께 있으면서 언니 오빠에게 미리 전화해서 봉투에 돈도 넣어주고 선물도 사서 주고 롤케익에 촛불 켜고 축가도 불러주고 했는데 작년에 출가를 하고 보니 지금은 텅빈집에 마누라와 단 둘이다.
내가 어린시절인 초등학교 때는 농촌에 쌀이 매우 귀하였다. 수리시설이 없어 가뭄과 장마피해가 극심 하였고 지금과 같은 우량 품종이 없어 농사는 하늘에 맞긴 시절 이였다. 벼 한가마 장래(대여)놓으면 다음해에 벼 두가마를 받는 고리 시절 이였으니 꽁당 보리밥인들 생일날 실컨 먹을 수만 있다면 천만 다행한 생일이다. 요즘 젊은층엔 그때 배가 몹시 곱았다고 하면 라면사서 끊여 먹으면 되지 하고 말 했을순 있지만 그땐 라면은 어떻게 생겼는지도 모르는 시절이다.
생일날 어떻게 운이 좋을땐 보리밥 가운데 쌀밥이 몇숯갈 있으면 생일상 잘 받은 것이다. 할아버지 할머니 아버지 어머니 언니 오빠 동생 삼촌 고모등 한집에 보통 10여명 이상이 쫍은 집에서 생활하고 있었으니 지금으로 보면 돼지집도 이보다는 훨씬크고 깨끗할 것이다. 생일날 국수를 먹으면 수명이 길어진다고 저녁때는 일부러 국수를 주로 먹었다. 양석(식량)이 모자라 어쩔수 없어 붙여본 핑계 인것 같다. 그래도 난 장남이고 장손이라고 어머니께서는 내 생일날엔 나만 특별히 보리밥 한가운데 쌀밥을 숨겨 주시곤 했다. 미역국이나 콩장국에 고등어나 꽁치 동가리(토막)에 달걀찜이 있다면 당시엔 최고이다. 이후 돼지국밥이 인기가 있었고 돼지불고기는 있기는 있었지만 꿈도못꾸고 지나가는 길에 주막집에서 숯불에 돼지고기 굽는 냄새만 맡았다.
그 당시 돼지고기 굽는 냄새가 얼마나 구수하게 입에 당겨 오는지는지는 요즘 젊은이들은 아무도 모른다. 소고기는 더욱 귀한 보물이지만 돼지고기도 얼마나 귀한 고기인지 현재와 비교할 수 없다. 서민들이야 1년이 가도 쇠고기는 물론 돼지고기 국밥 구경 한번 하지 못 한 이가 수두룩 할 정도였으니까.
원인은 그 당시 우리나라 전체가 현재와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너무나 많이 가난했기 때문일 것이다.
앞으로 늙으면 물러나는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천대받으며 용도 폐기되는 것 같은 상황은 바람직하지 않다. 적어도 우리세대는 공짜로 살지는 않았다. 지금 우리가 이만큼 먹고살게 된 것도 우리가 벌어 놓은 것이기에 은퇴세대를 모래알 같은 소모성 세대로 보는 시각이 있는 것은 아닌지를 생각해 보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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